부시행정부 정보독점…'알권리 침해' 심각

  • 입력 2003년 12월 14일 18시 43분


코멘트
‘정보가 백악관에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지는 않는다.’

시사주간지 US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 최신호(22일)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가 통제하는 정보는 많아지고 정부로부터 시민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모조리 국가기밀=부시 행정부 출범 후 2년간 총 4450만건의 정보가 국가기밀로 분류됐다. 빌 클린턴 행정부 2기 4년 동안 지정된 기밀 건수와 비슷하다.

올해 3월 발효된 대통령령에 따라 예전에는 기밀이 아니던 것이 기밀로 변한 것도 많다. 부시 행정부는 또 행정명령을 통해 농업, 보건, 환경 분야에서 국가기밀 지정 권한을 갖는 정부 직원을 늘렸다.

9·11테러 이후 제정된 국토안보법은 교통 통신 에너지 등 인프라 관련 기업들이 핵심 정보를 국토안보부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관련 업계와 정부의 대테러 공조를 위한 정보를 공유하자는 게 당초 취지.

그러나 일단 기업이 국토안보부에 제출한 정보는 정부의 허가 없이는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어 기업들은 이 제도를 시민단체나 경쟁사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방편으로 악용하고 있다.

▽알릴 생각이 없는 정부=버지니아주 플로이드 카운티 주민 조지프 매코믹은 2001년 에너지 대기업의 천연가스관 공사 소식을 듣고 파이프라인 통과 예상지역을 알고 싶어 계획도를 정부에 요청했다. 이전에는 쉽게 받아볼 수 있는 자료였지만 거부당했다. 공사가 시작되면 누구나 위치를 알게 되는데도, 테러리스트들이 파이프 위치를 알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메릴랜드주 애버딘 주민들은 인근 군 기지의 무기시험장에서 독성 물질이 상수도로 흘러드는 것 같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군에 수질오염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올해 초 군이 제공한 지도에는 주요 도로명과 건물명이 모조리 지워져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돼 있었다. 이유는 테러리스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공화당 의원들조차 백악관이 의회의 자료 요청을 거부하는 일이 잦다며 불만이다.

연방 항공당국은 항공사, 조종사, 항공기계 등과 관련해 예전에는 온라인상에서도 볼 수 있던 기초 정보들을 막아버렸다. 정부로부터 정보를 얻는 수수료도 비싸져 과거 300달러 수준에서 6500달러로 오른 것도 있다.

기업들의 로비도 영향을 미친다. 4년 전 포드자동차의 타이어 결함으로 안전사고가 나자 의회는 새 법을 제정해 자동차와 타이어 제조업체들이 안전 테스트 자료를 정부에 의무적으로 제출토록 했다. 이런 자료는 일반에도 공개되는 것이 관례. 하지만 업체가 수개월간 로비를 벌인 결과 부시 행정부 들어 현장테스트 자료, 고객불평 사항 등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

▽안보 강화도 좋지만=잡지는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였는데, 이제 절박한 필요가 없는 한 국민은 정부 정보에 접근할 수 없게 됐다”며 “안보도 중요하지만 공익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절박한 필요’를 입증하지 못한다고 해서 정보 접근이 차단되면 시민단체나 지역 주민들이 정부 활동을 감시할 수 있는 통로가 막히게 된다는 것이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