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호원/춤추는 善心법안…잠자는 民生법안

  • 입력 2003년 12월 14일 18시 32분


코멘트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선심성 입법’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나라당 이주영(李柱榮) 의원 등은 정기국회 폐회 3일 전인 6일 아파트 경비비 및 일반관리비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면세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의원들의 생색내기용에 그칠 전망이다. 우선은 심의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수십개 법안이 계류 중인 국회 재정경제위는 이 개정안의 검토 일정조차 잡지 못해 이 개정안은 다음달 8일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면 자동폐기될 운명이다.

이 의원측은 “이달 안에 처리가 되도록 노력 중”이라고 밝혔지만 법안을 제출했다는 생색을 낸 것만으로도 선거운동은 충분히 한 셈이다.

이뿐 아니다. 60개가 넘는 감세법안 제출 때문에 정부의 세제 개편안은 이미 제 모습을 잃고 누더기 꼴이 될 형편이다.

11일에도 재경위는 재정경제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맥주세율을 현행 100%에서 2007년까지 72%로 낮추는 주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연간 1500억원 이상의 세수 감소를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맥주 세금 인하(매년 병당 50원 안팎)가 술집의 맥주가격 인하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재경위의 한 전문위원도 “세율인하가 전액 소비자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부정적 검토 의견을 낸 바 있다.

소득세법 개정안에 포함된 ‘이사비용·결혼비용·장례비용 공제제도’도 당초 9월 정부가 제출했던 개정안엔 없던 내용이다.

총급여액 2500만원 이하 근로자에게 이사비용, 결혼비용, 장례비용을 각각 연 100만원씩 근로소득에서 공제해주는 이 제도는 세법전문가들로부터 “조세 경감 효과가 적어 총선용일 뿐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와 농림해양수산위는 각각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고 노후 연금액을 줄이는 국민연금법 개정안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위한 농어민 지원 4대 법안 처리를 총선을 의식해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허상만(許祥萬) 농림부 장관은 10일 농해수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여야 간사들이 합의를 다 해놓고 이제 와서 법안 처리를 안 해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빠듯한 국회 일정에 비추어 기존 법안의 충실한 심의·처리에도 갈 길이 바쁜데 총선을 의식한 생색내기용 입법안을 앞 다투어 내놓는 의원들의 구태는 언제쯤 고쳐질까. 이번 총선에서부터라도 이런 구태를 되풀이하는 의원들을 유권자들이 심판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호원 정치부 기자 bestig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