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불법자금 한나라 10% 넘으면 사퇴"]“대통령직 걸고 게임하나”

  • 입력 2003년 12월 14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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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된 계산인가, 우발적인 발언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불법 선거자금 논란과 관련해 정계은퇴까지 언급하며 정면 승부수를 던지자 그의 속내를 둘러싼 추측이 분분하다.

일단 노 대통령이 재신임 국민투표 카드에 이어 다시 대선자금 문제에 조건부로 책임을 지겠다는 ‘승부수 2탄’을 던진 것은 다소 돌발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정교하게 준비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더 많다.

청와대 한 핵심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내 측근들이 아무리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한나라당의 10분의 1, 아니 20분의 1도 안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면서 “사정이 이런데도 한나라당에서 ‘노무현 캠프도 1000억원을 받았다’ ‘검찰이 편파수사를 하고 있다’고 공세를 펴는 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불법자금 받은 게 별로 없다고 해명을 해도 한나라당에서는 ‘선수들끼리 왜 그러나. 여당이 더 받지, 야당이 더 받았겠느냐’며 딴죽을 걸고 있다”면서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이 같은 행태에 ‘열 받아서’ 한 말이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노 대통령이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로 뽑힌 뒤에도 정치후원금이 들어오지 않자 반노(反盧)파 의원들이 “후보가 돈도 안 만들어 온다”며 노골적으로 흔들었던 점을 들어 “참모들이 후보 몰래 받았다고 해도 한나라당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할 때도 20년 집사인 최도술(崔導術)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의 금품수수 비리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이와 무관하게 일찌감치 기획했다는 게 여권 안팎의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이번에도 노 대통령이 여야의 불법 정치자금 규모에 대한 총량 규모를 어림짐작으로라도 파악해 놓은 상태에서 초강수를 던졌을 것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중대 현안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통령직 사퇴’나 ‘정계은퇴’와 같은 극단적인 수사(修辭)를 동원하는 데 대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무책임하게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청와대 내에서조차 나오고 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각당 반응▼

노무현 대통령이 14일 4당 대표 회담에서 ‘조건부 정계은퇴’ 발언을 한 데 대해 민주당과 자민련은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직공했다. 한나라당은 노림수를 파악하느라 신중한 태도였고 열린우리당은 엄호자세를 취하면서도 돌출 발언에 불만스러운 기색이었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재신임 투표 발언시 성급하게 이를 기정사실화해 안팎의 비판을 샀던 점을 의식한 듯 “즉흥적 발언인지, 준비된 발언인지 알 수 없지만 의아스럽다. 그런 얘기를 즉흥적으로 할 수 있느냐”고 일단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박진(朴振) 대변인은 “반성하고 사죄하는 차원이라면 납득하겠지만 재신임 문제처럼 비리책임을 모면하려는 의도라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성순(金聖順) 대변인은 “부정과 비리를 상대적 개념으로 보는 시각부터가 잘못됐다. 그렇다면 11분의 1이라면 괜찮다는 말이냐”며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발언에 이은 경솔한 발언으로 검찰 수사에 간섭하는 지침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강운태(姜雲太) 사무총장은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니 검찰이 여권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를 10분의 1 이하로 맞추는 고생을 해야겠네”라고 꼬집기도 했다.

자민련 유운영(柳云永) 대변인은 “아무리 불법대선자금을 많이 쓰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발언이라 해도 대통령의 발언으로서는 적절치 않다”고 논평했다.

우리당은 “규모와 죄질이 천양지차임에도 한나라당이 자꾸 균형을 얘기하고 ‘여당은 더했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니까 그런 얘기가 나온 것”(김원기·金元基 공동의장)이라고 엄호했다. 이평수(李枰秀) 공보실장은 “깨끗한 정치 실천을 위해 대통령 스스로 희생적 자세를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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