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프로농구 모비스사령탑 물러난 최희암 감독

  • 입력 2003년 12월 14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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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기자
김미옥기자
인적이 뜸한 한겨울 대학 캠퍼스는 쓸쓸해 보였다.

가뜩이나 마음 한 구석이 텅 비었을 텐데 약속 장소를 잘못 잡았나 싶었다. 최근 프로농구 모비스 사령탑에서 스스로 물러난 최희암 감독(48). 사퇴 5일 만인 10일 서울 신촌 연세대에서 만난 최 감독은 자꾸 “춥지 않으냐”고 묻는다. 정작 썰렁한 것은 누구보다 자신일 텐데….

연세대는 최 감독을 명장에 올려놓은 마음의 고향. 농구부 숙소의 한 구석을 차지한 수많은 우승컵은 최 감독의 화려한 과거를 말해주는 듯했다.

그런 그가 불명예스러운 중도하차의 멍에를 썼다. “스스로 읍참마속하는 심정이었습니다. 내가 나가서 변화의 물꼬를 터야 했죠. 선수들을 희생시킬 수 없었습니다.”

모비스 구단은 최 감독의 사퇴를 극구 만류했다.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벤치를 지켜달라는 주문. 그러나 아마추어 시절 정상을 질주한 그의 자존심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구단의 그런 반응이 더 힘들었습니다. 내가 회사 책임자라면 당장 잘랐을 겁니다. 감독은 샐러리맨이 아닙니다. 만족할 성적을 낼 수 없다면 그만둬야죠.”

그만둔 시점은 정규리그 54경기 가운데 절반도 채 끝나지 않은 18경기 만이었다. 너무 빠른 결정은 아니었을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더 일찍 관뒀어야 했어요. 여러 차례 사퇴 의사도 밝혔고요. 지난달 중순 진작 조정이 됐더라면 팀 정비에 시간적 여유도 있었을 텐데….”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현대건설 직원으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근무하던 최 감독은 86년 31세의 나이로 모교 연세대 감독에 부임한 뒤 16년 동안 팀을 이끌며 전성기를 누렸다. 89년 4월 춘계연맹전 우승을 시작으로 20차례 넘게 정상에 올랐고 통산 300승 이상을 거뒀다. 프로농구 출범 이전 농구대잔치에서 성인 팀을 연파하고 2차례나 우승 헹가래를 받았다. “아내 사진 넣고 다니면 편하다”는 TV 속옷 광고 모델로 나선 것도 이즈음.

하지만 오랜 대학 감독 끝에 지난해 3월 처음 오른 프로무대에선 번번이 시행착오를 일으켰다.

“대학은 가능성 있는 선수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프로는 정형화된 선수가 대부분이더군요. 학교에선 전권을 줬지만 프로는 달랐고 구단측에 믿음을 주지 못한 것도 실책입니다.”

대학에서는 스카우트를 통해 우수 선수를 뽑고 3, 4년에 걸쳐 재목으로 만들 수 있는 반면 드래프트와 트레이드로 전력을 보강하는 프로는 원하는 선수 구성이 어려웠다는 것. 최 감독을 20년 넘게 알아 온 한 프로 감독은 “프로는 서서히 변화를 줘야 하는데 너무 빨리 뭔가를 해내려다 뜻을 못 이뤄 견디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한다.

최씨에 옥니, 곱슬머리로 ‘독종’의 3대 조건을 모두 갖춘 최 감독은 훈련도 스파르타식. 그 방식은 프로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운동에 방해가 된다며 야간에는 선수들의 휴대전화를 모두 빼앗기도 했고 선수들이 개인 일정을 잡기 어려울 만큼 훈련 스케줄이 빡빡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자 선수들은 주눅들 때가 많았고 경기 중에도 벤치 눈치를 봤다. 맥도웰이 처음 모비스에 합류해 동료들에게 “최 감독이 여전히 때리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현대 시절 연세대와 연습경기를 하다 최 감독이 선수를 혼내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최 감독과의 마찰을 이유로 지난 시즌 직전 강동희 김영만이 잇달아 트레이드를 요구해 팀을 떠난 것도 전력 약화를 불렀다.

“훈련은 집중력 있게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심하게 다그치기도 했지만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대신 경기 때는 편안하게 해줍니다. 대학 때는 이런 내 스타일을 선수들이 잘 알아 별 탈이 없었는데 프로에선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경험 미숙이었던 셈이죠.”

‘4쿼터의 저주’라는 말이 나올 만큼 유난히 역전패가 많았던 기억을 떠올릴 때는 착잡한 표정이 역력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역전패를 9차례 정도 경험했습니다. 남들이 10년 동안 겪을 일을 불과 두 달 동안 다 당했습니다.”

용병 선발도 순탄치 않았다. 지난 시즌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얻었으나 잘못 뽑아 교체 홍역을 치른 뒤 올해에는 맥도웰과 바셋을 선발했지만 고민은 여전했다.

템포를 조절할 수 있는 포인트가드를 뽑기 위해 황성인(SK) 영입에 공을 들였으나 실패했다. 최 감독은 사퇴라는 마지막 카드를 내건 채 맥도웰 교체를 요구하며 몽니까지 부렸으나 끝내 뜻을 못 이뤘다고 털어놓았다.

최 감독의 생일은 12월 24일로 크리스마스이브. 늘 농구 시즌의 한가운데여서 가족과 함께 생일을 보낸 기억이 별로 없다. 올해는 다르다. “한 20년 만에 생일을 집에서 보내게 됩니다. 모처럼 친지들과 식사라도 함께 해야죠.”

컴백 가능성에 대해 “기회가 있다면…. 앞으로의 일을 누가 알겠어요”라며 여운을 남긴 최 감독은 인터뷰하는 동안 줄담배를 피웠다. 시즌 전에는 안 피웠던 담배였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고독한 승부사의 고뇌가 아른거렸다.

▼최희암은 누구▼

△생년월일=1955년 12월24일

△출신지=전북 무주

△신체조건=1m77, 82kg

△혈액형=B형

△가족관계=조민경씨(44)와의 사이에 2남

△출신학교=미동초등-휘문중-휘문고-연세대 체육교육과-연세대 교육대학원

△출신 팀=현대 창단멤버(77∼82)-연세대 감독(86∼2002)-모비스 감독(2002∼2003)

△주요 수상경력=대한농구협회 최우수코치상(90,92), 농구대잔치 3회 우승(93∼94, 96∼97, 97∼98)

△취미=골프(90대 중반)

△주량=소주 4분의 3병

△좋아하는 노래=사랑 투(윤도현)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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