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전달 형태 제각각, 공통분모는 차량"

  • 입력 2003년 12월 13일 12시 06분


코멘트

수백억원대의 현금이 재계에서 정치권으로 전달되는 행태가 기업 마다 제각각이나 대부분 차량을 동원한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어 화제다.

과거 은밀하게 봉투나 돈 가방을 전하던 형식에서 벗어나 아예 차떼기로 현금을 전달하는 등 규모나 행태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이처럼 차량이 주요 전달 수단으로 ‘각광’ 받게 된 것은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돈을 수표가 아닌 현금으로만 주고 받게 되었기때문.

엄청난 부피와 무게를 감당하고 신속하게 전달하려면 아예 차 째 주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번 차떼기 현금 전달과정에서는 승용차에서 승합차 심지어는 2.5t 화물트럭까지 등장해 충격을 주고 있다.


(위 사진은 당시 상황을 가정해 만든 합성사진으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 입니다. 따라서 사진속의 차량은 사건에 사용됐던 실제 차량은 아닙니다.)

▽LG-현금 150억원 트럭째 줘▽

LG의 2.5t 화물트럭은 이번 대선자금 전달방식의 백미.

검찰에 따르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법률특보와 개인후원회(부국팀) 부회장을 지낸 서정우 변호사는 지난해 11월22일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서 LG구조조정본부 이모 상무로부터 현금 150억원이 실린 2.5t 탑차(유개트럭)를 전달받았다.

서씨는 당시 현장에서 탑차 키를 넘겨받았으며 차량 내에는 현금 2억4000만원씩이 담긴 62개 종이박스와 1억2000만원이 든 1개의 종이 박스가 실려 있었다고 한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돈 박스를 눈에 잘 띄지 않는 승합차에 나눠 실어 신중하게 전달했지만 LG는 아예 ‘트럭떼기’로 대담하게 옮긴 것.

LG는 LG상사 안양물류센터에서 바로 만남의 광장으로 직행해 돈을 건넸다.

▽현대자동차-100억원 스타렉스 승용차째 줘▽

현대자동차도 한나라당 대선자금 100억원을 LG그룹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서정우 변호사에게 건냈다.

그러나 LG그룹의 대담한 ‘트럭 차떼기’에 비해선 그 방법이 다소 소심하다.

LG그룹이 서정우씨에게 돈을 전하기 약 1주일 전인 11월 중순, 현대측은 100억원을 2억원짜리 사과박스 20개와 1억원짜리 박스 60개로 만들어 스타렉스에 싣고 이틀에 걸쳐 전달했다.

현대캐피탈 직원은 첫날 먼저 2억원짜리 사과박스 10개와 1억원짜리 박스 30개를 스타렉스에 실은 뒤 청계산 주차장까지 몰고 가 그곳에 대기 중이던 최모 현대차 부사장에게 넘겼다.

최 부사장은 스타렉스를 몰고 LG그룹의 경우와 같이 오후 7시경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으로 가 차 째로 서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두 차례로 나눠 돈을 건낸 이유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들은 “스타렉스 승용차에는 한 번에 80개의 박스가 들어가지 않는데다 더 큰 차를 이용할 경우 쉽게 눈에 띌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검찰에서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측은 서 변호사에게 제공한 100억원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돈이라고 주장해 돈의 출처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SK-첩보전 방불케 한 전달과정▽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이 대선직전 SK로부터 100억원의 비자금을 받는 과정은 영화의 첩보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신속하고 은밀하게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강원지역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던 최 의원은 주로 강릉에 머물면서 이 지역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최 의원은 SK측으로부터 “돈이 준비됐다”는 연락을 받으면 강릉에서 곧바로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으로 이동했다.

최 의원은 강릉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도중에 휴대폰을 이용, SK 실무자에게 수시로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고 자신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SK 실무자가 나타나도록 지시, 다른 사람의 눈을 최대한 피했다.

SK 실무자들이 최 의원의 엔터프라이즈 승용차에 돈을 실어놓고 가면 불과 2분 만에 당 재정국 실무자가 사전에 알려준 번호판을 단 차량을 타고 와 이 돈을 고스란히 싣고 갔으며 이 모든 것이 5분내 끝났다는 것.

이 때문에 최 의원은 수차례에 걸쳐 비자금을 받으면서도 돈 뭉치를 확인하거나 당에 돈을 운반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일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동중의 빈번한 휴대폰 통화가 거꾸로 검찰조사에서 ‘혐의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 결정적 증거’가 됐다고.

▽삼성-채권을 책으로 만들어 전달▽

비자금 전달방식에 있어서 가장 깔끔한 방식을 사용, 검찰과 정치권에서 ‘역시 삼성’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검찰에 따르면 삼성은 서정우 변호사를 통해 한나라당측에 모두 152억원의 대선자금을 전달했다.

이 가운데 112억원은 국민주택채권을 ‘책자’로 만들어 전달하는 기발한 방식을 이용했다.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은 지난해 11월초 자금을 제공한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가며 삼성에 이미(10월말경) 제공한 현금 40억원 이 외에 ‘추가 자금’을 줄 것을 요구했고, 삼성은 서 변호사를 만나 구체적인 액수와 전달방법을 논의했다.

서 변호사는 100억원을 요구했고 양측은 즉각 현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채권으로 만들기로 합의하고 할인에 필요한 선이자 12억원을 추가로 포함시켰다.

삼성 김모 재무팀장은 자기압수표 2장 분량 크기의 국민주택채권을 2열로 쌓아 월간지 한권 정도 높이로 만들고 이를 포장용 종이로 싸 얼핏 보기에 그냥 한권의 책처럼 보이도록 했다.

김 팀장은 이런 방법으로 55억원짜리 채권 한 묶음과 57억원짜리 채권 한 묶음을 만들어 11월 중순과 하순경 두 차례에 걸쳐 서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