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직속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외환보유액 일부를 해외에 투자하기 위해 KIC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구상에는 한은이 외환보유액을 지나치게 안정성 위주로 운용하고 있다고 본 재경부의 ‘입김’도 영향을 미쳤다.
위원회는 이 계획을 발표하면서 “싱가포르 투자청(GIC)과 같은 정부투자기관은 외환보유액의 효율적 관리와 해외신인도 제고에 큰 역할을 할 것이며 한국이 동북아 금융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와 재경부가 추진해 온 KIC설립 논의 과정에서 외환보유액 운용책임을 맡고 있는 한은은 배제됐다.
이에 대해 한은은 이달 초 ‘기밀’에 속하는 외환보유액의 투자수익률을 공개하는 초(超)강수를 두며 KIC 설립에 반발하고 나섰다.
이재욱(李載旭) 한은 부총재보는 4일 기자회견을 갖고 “한은의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률은 국제투자은행들의 기준 수익률 6.14%를 웃돌고 있어 수익성이 낮다는 비판은 온당치 않다”고 밝혔다. 한은이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률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금까지 국정감사 답변에서도 공개한 바 없다.
이 부총재보는 또 “통일 등까지 고려하면 현재 외환보유액이 오히려 더 늘어야 하며 11월 말 외환보유액 1503억달러 가운데 1269억달러(84%)는 ‘한은 소유’이고 나머지 234억달러(16%)만이 외국환평형기금으로 정부 소유”라며 “외환보유액을 헐어 투자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반발의 배경에는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 KIC가 재경부의 외청(外廳)으로 재경부 관료들의 ‘노후보장용 직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한은측의 ‘의심’도 작용했다.
그러나 한은의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률 공개는 ‘역풍(逆風)’을 불러왔다.
재경부 당국자는 “한은 발표 내용을 분석하면 바로 외환시장 개입규모를 알 수 있어 국익에 해로운 데도 한은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공개하면 안 될 것까지 밝혔다”고 공격했다. 한은의 수익률 공개는 감사원의 특감 결정에도 빌미를 준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위원회는 11일 대통령에게 KIC 설립계획을 보고하고 구체적인 추진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KIC 설립’ 쪽에 훨씬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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