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 中동포에겐 ‘차가운 고국’…단속피해 생활 凍死

  • 입력 2003년 12월 10일 00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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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체류자 단속을 피해 생활하던 중국 동포가 9일 새벽 서울 도심에서 112와 119에 13차례나 도움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동사했다.

9일 오전 5시20분경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고가 인근 인도에서 중국동포 김모씨(44)가 누워 숨져 있는 것을 환경미화원 김모씨(55)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의 몸에 외상은 없었다.

조사 결과 숨진 김씨의 휴대전화에는 이날 오전 1시15분 119에 1분43초, 1시18분부터 4시25분까지 각각 6초∼4분여 동안 112에 13차례 전화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경찰청 112신고센터의 통화기록 확인 결과 김씨는 “종로4가에서 창덕궁 가는 길에 있는데 힘이 없어 못 가겠고 추워 죽겠다”며 순찰차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서울청 112신고센터는 “김씨가 자신이 있는 곳이 ‘종로4가’라고 밝혔으나 종로4가가 워낙 넓은데다 집이 종로 4가에서 5가 사이에 있는 기독교100주년 기념관이라는 등 횡설수설해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가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김씨가 숨진 장소는 혜화지구대에서 불과 20여m 떨어진 곳이어서 경찰과 119구급대가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씨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으로 2000년 7월 5일 국내로 밀입국해 기독교100주년 기념관에서 다른 중국 동포들과 불법 체류자 강제추방에 반대하는 농성을 벌이다 2일 농성장에서 이탈했다.

중국에 부인과 아들을 두고 있는 김씨는 건축현장에서 주로 일했으며 500여만원의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해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단속 때문에 돌아갈 수 없었다고 지인들이 전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시체 부검을 의뢰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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