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487…목격자 (3)

  • 입력 2003년 12월 9일 18시 26분


코멘트
하나자키 선생님이 김치를 좀 가져오라는데요, 하고 어머니에게 부탁을 했지요. 값비싼 젓갈과 잣을 넣어 만든 포기김치는 아버지가 먹고, 여자들은 시퍼런 배추 이파리로 담근 허드레 김치를 먹잖습니까? 어머니는 아버지가 먹는 맛있는 김치를 조그만 항아리에 담아 보자기에 싸 주었죠…네, 관계가 있어요, 춘식이, 그러니까 이우근이하고…. 나하고 춘식이가 친해진 계기가 말입니다. 차례차례 이야기할 테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리세요.

난 그 김치를 들고 하나자키 선생님의 사택을 찾아갔는데, 이렇게 매운 걸 일본 사람이 먹을 수 있을지,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점심을 사택으로 돌아가서 먹어요. 그래서, 철조망을 빠져나가 사택의 널울타리로 들여다보았죠. 아, 그 널울타리에는 구멍이 뚫려 있잖습니까? 동전만한 크기의 구멍에 눈을 딱 갖다 붙이고 말이죠, 그런데 하나자키 선생님이 찻잔에다 물을 붓더니 김치를 씻어 먹는거예요. 역시 매운 건 잘 못 먹는구나 싶어서 고소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았어요. 일주일 후에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또 김치를 가져오라는 겁니다. 어이, 니시하라군, 김치, 얼마 안남았으니까, 내일 가져오라고 말이죠. 어머니에게 얘기했더니, 네가 맞지 않을 수만 있다면 김치 정도는 싸게 치는 거라면서 매주 월요일 김치를 싸줬습니다. 월요일만 되면 김치를 사택에 갖다줬어요. 그리고 점심 때가 되면 슬쩍 보러 갔지요. 역시 선생님은 김치를 물에 씻어 먹더군요. 그런데 세 번째부터는 씻지 않고 그냥 먹는 겁니다. 야, 대

단하다 싶었죠. 그때 처음 하나자키 선생님이 존경스러웠습니다…아아, 이제 금방 등장합니다. 춘식이가 곧 등장해요.

당시, 대용식의 날이란 게 있잖았습니까? 식량난이 심해서 주식인 쌀을 절약하려고 빵이나 감자로 도시락을 싸 가는 겁니다.

대용식의 날에는 선생님도 교실에서 같이 점심을 먹는데, 하나자키 선생님 부인, 아, 하나자키 가쓰에라고 하죠. 그 가쓰에씨가 점심시간 전에 살짝 와서 교실 제일 뒤에 있는 창틀에다 도시

락을 놓고 가요. 그런데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요. 수업 중에 힐끗힐끗 돌아보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보질 못했어요.

글 유미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