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프로’ 이승엽의 ‘아마추어’ 협상

  • 입력 2003년 12월 8일 17시 42분


코멘트
일본 진출이 확실시되는 이승엽이 지난 한달 남짓 고심했던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는 게 사실이다.

먼저 에이전트 문제. 이승엽은 미국과 일본에 서로 다른 에이전트를 뒀다. 둘 사이에 경쟁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베팅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미국의 SFX로선 조바심을 낸 흔적이 역력하다. 메이저리그로부터 수용 가능한 확실한 제의가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일단 이승엽을 미국에 불러놓고 본 것이 이를 증명한다.

불행하게도 이는 이승엽의 ‘원죄’가 시작된 계기가 됐다. 가격 흥정이 채 이뤄지기도 전에 너무 빨리 시장에 선을 뵀던 이승엽은 미국에서 수치심만 안은 채 귀국했다. 반면 대접이 다르긴 하지만 역시 SFX 소속인 마쓰이 가즈오는 일본에서 협상의 진행과정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SFX가 언론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에이전트 존 킴은 “추측기사가 남발해 협상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SFX는 일본의 J's엔터테인먼트와는 달리 지금 이 순간까지 이승엽이 제시받은 조건에 대해선 명확한 언급이 없다.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할 언론이 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조변석개했던 이승엽의 갈대 마음도 믿음을 주지 못했다. 이승엽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른생활 사나이. 그가 남을 속이려는 의도로 그랬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승엽은 정치인 뺨치게 수없이 말을 바꿨다. ‘마이너리그라도 무조건 미국행’에서 ‘한국 최고 타자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겠다’로, 급기야는 ‘제대로 대접을 못 받을 바에야 2년 후 메이저리그 재진출’을 앞세우며 일본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일부 팬 사이에서 이승엽이 ‘돈독’이 올랐다는 비난이 나온 이유다.

사실 이승엽이 일본으로 가는 것은 그의 선택이다. 기자는 3주 전 칼럼에서 미국이 안 되면 국내 잔류를 권했지만 다시 생각하니 일본행도 전혀 명분이 없지는 않다. 국민타자가 마이너리그에서 썩는 것보다는 돌아가더라도 일본까지 정벌한 뒤 빅리그에 화려하게 데뷔하는 시나리오도 멋지지 않은가.

하지만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이제 이승엽은 팬들의 무너진 자존심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새로운 부담을 안게 됐다. 일본이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닐 터. 성공하면 두 배, 실패해도 두 배의 환희와 좌절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