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私교육]2부 사교육의 폐해 ①무너지는 公교육

  • 입력 2003년 12월 7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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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사교육 문제를 진단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교육개발원과 공동으로 사교육 시리즈 2부를 시작한다. 10월 게재한 1부에서는 사교육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호황을 누리고 있는 학원의 모습과 학원교육의 허실 그리고 고액과외의 폐해 등을 다뤘다. 2부에서는 한국교육개발원이 전국의 학생 4588명, 교사 2582명, 학부모 1만24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광범위한 조사 내용과 통계를 바탕으로 사교육의 부작용과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 등을 4회에 걸쳐 게재한다.》

지난달 30일 서울 A여고 2학년 교실 국어수업 시간.

2명의 학생이 뒤를 돌아보며 뒷자리에 앉은 학생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30여명의 학생 가운데 절반 이상은 고개를 숙인 채 잠을 자고 있었고, 어떤 학생은 손거울을 꺼내 계속 얼굴을 들여다봤다. 또 다른 학생은 손을 책상 아래로 내리고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은 5, 6명에 불과했지만 교사는 잠자코 교과서를 들여다보며 수업을 진행했다.

▽학교는 잠자는 곳=서울 S고 2학년 박모군(17)은 학교에서 제대로 듣는 수업이 거의 없지만 성적은 상위권이다. 학교 수업시간에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거나 학원 숙제를 한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내신 관리를 하고 친구나 사귀는 곳”이라는 게 박군의 생각이다.

학생들의 사교육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학교수업이 무너진 지 오래다.

서울 J고 3학년 이모군(18)은 “학교수업은 학원수업에 비해 깊이가 없고 자세하지도 않다”며 “선생님도 수업 준비에 소홀하거나 무성의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예 학생들이 학원에서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도 적지 않다.

학부모 유모씨(44·서울 광진구 중곡동)는 “처음 나온 내용도 마치 복습하듯 가르치는 교사가 있어 학원을 안 다닌 아이가 곤혹스러워한다”면서 “교사가 ‘학원에서 다 배우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낮은 학교수업 만족도=한국교육개발원이 초중고교생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학교 교육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응답학생 4588명 가운데 28.2%인 1593명만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주요 과목 수업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이 넘는 51.8%는 ‘보통이다’, 20%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부모 1만2462명 가운데 만족하는 비율은 32.9%였다. 53%가 ‘보통이다’, 19%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응답했다.

사교육의 효과와 관련해 응답학생의 51.7%가 ‘학교 성적이 향상됐다’고 말했으며 ‘고교 및 대학 진학에 효과가 있다’고 응답한 학생의 비율은 49.4%였다.

▽교사들도 할 말 있다=교사들은 “학업 능력 수준이 제각각인 학생들을 한데 모아 놓고 가르치다 보니 수업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2001년에 고교평준화제도가 도입된 경기 고양시 일산구 B고 박모 교사(43)는 “평준화 이전에는 교과서 이외에 다양한 보충교재를 활용하며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교과서 내용도 따라잡기 벅차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또 학생이 교과목을 선택하는 제7차 교육과정이 도입되고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수험생이 응시영역을 선택할 수 있게 돼 대학입시와 무관한 교과목 수업은 아예 포기하는 학생이 늘어났다고 호소했다.

서울 M고의 한 국어교사는 “학교에서는 교육 과정상 수능에 나오지 않는 단원도 가르쳐야 하지만 학생들은 시험범위가 아니면 아예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면서 “수능 준비가 급한 아이들에게 억지로 수업을 들으라고 강요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내신 부풀리기도 문제=많은 대학이 석차(등수)가 아닌 평어(수우미양가)로 내신성적을 입학전형에 반영해 ‘내신 부풀리기’가 만연된 것도 학교수업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일부 교사들은 학생들이 좋은 평어를 받도록 시험을 쉽게 내거나 심지어 중간 및 기말고사에 나올 문제를 찍어주기도 한다. 이럴 경우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 전념하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다.

학부모 최모씨(45·서울 강남구 압구정동)는 “고교 1학년인 아이가 국사과목에서 한 문제를 틀려 98점을 받자 과목 석차가 100등을 넘어 놀랐다. 기술과목은 만점자가 150명이 넘는다고 하더라”면서 혀를 내둘렀다.

서울 K고 강모 교사는 “우리 학교만 성적 부풀리기를 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손해 볼 게 뻔한 데다 한 과목이라도 ‘미’가 있으면 수시모집에 지원하기조차 어렵다”며 “내신성적 산출용 시험을 전국적으로 치르지 않는 한 이런 폐단을 고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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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전형'도 학원의존 한요인▼

“학교에서 3년간 보낸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학원에서 1년간 재수한 것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훨씬 효과적이었어요.”

재수생 박모양(19)은 “학교 수업과 수능시험은 별개”라고 잘라 말했다. 박양의 주장처럼 고교 수업 내용과 동떨어진 수능 시험, 복잡한 대입 전형방법, 논술 및 구술면접고사 등 현행 대입제도가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일선 교사들도 “정부가 고교의 실제 수업 현실과 수능이 서로 틀리도록 해 놓고 공교육의 문제점을 들추며 학교를 몰아붙이고 있다”고 항변한다.

수능 문제는 고교의 여러 교과 과정을 통합한 형태이며 유형화되어 있기 때문에 학원에서 반복 훈련을 한 학생들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수능이 사교육을 부추기는 효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학별로 다양한 입학 전형방법도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사교육 기관은 학교에 비해 전문적으로 대학 입시 정보만을 다루는 담당자가 있고 이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전형은 부모의 정보력에 따라 자녀의 대학 진학이 결정된다는 말까지 나돌게 하고 있다. 일례로 수년 전 서울 모 대학이 150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한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을 처음 도입했을 때 이를 알고 발 빠르게 대처한 부모는 자녀를 대학에 수월하게 합격시킬 수 있었다. 불안감을 느낀 학부모들은 입시 상담차 더욱 사교육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입시설명회장마다 학부모들이 몰리는 모습에서도 이 같은 현상을 느낄 수 있다.

서울 S고 3학년 담임교사는 “199개 4년제 대학의 전형방법은 수백 가지일 것”이라며 “35명이나 되는 학생 개개인의 성적과 적성 등을 면밀히 파악해 진학 지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올해 수능과 같이 중상위권 학생층이 두꺼울수록 대학 합격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논술과 구술면접 역시 대학별로 유형이 다르다. 고교에서는 나름대로 논술 구술면접 대비반을 운영하기는 하지만 “별 효과가 없다”며 학생들이 외면하기 일쑤다.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전상룡(全相龍·서울 동덕여고 교사) 부회장은 “고교에서 이뤄지는 교육활동을 반영할 수 있는 대학 입시제도가 마련돼야 사교육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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