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교육이 기술경쟁력]<상>산학협력

  • 입력 2003년 12월 7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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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은 최근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 연설에서 “핀란드의 국가경쟁력은 교육에서 나온다”고 자랑했다. 핀란드는 공학 교육에서 세계 최고로 꼽힌다. 세계 경제 무대에서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중국은 대학이 직접 기업을 설립하는 ‘샤오반(校辦)기업’ 체계로 기술력을 확보한다. 중국의 특허출원 건수는 대학과 기업이 반반일 정도. 두 나라의 공통점은 산학(産學) 연계를 통한 기술인력 양성으로 성장의 동력을 만들고 국가경쟁력을 높인다는 점이다. 두 나라의 공학교육 현장을 통해 선진국과 후발공업국의 틈바구니에 있는 한국의 교육 대안을 모색해본다.편집자》

핀란드의 겨울은 어둡고 우울하다. 수도 헬싱키에서 자동차로 30분 남짓 걸리는 에스포시(市). 세계 1위의 휴대전화 제조업체 노키아 본사와 공과대학이 몰려 있는 이곳으로 가는 동안 눈에 띄는 건 자작나무와 호수가 대부분이었다.

한국만큼 자원이 없고 90년대 초 외환위기까지 겪은 핀란드가 1인당 국민소득 2만3304달러(2001년)의 선진국이라는 게 신기할 정도다. 에스포시의 대학과 기업에서 핀란드가 기술 강국이 된 비결을 찾을 수 있을까.

핀란드의 대학들은 산학 공동 연구와 인재 양성을 위해 교수, 기업인, 정부 관계자 등이 모여 매달 정기회의를 갖는다(위). 기업인 출신 교수도 많아 대학 강의는 실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헬싱키=이은우기자

핀란드의 대학은 모두 49개. 이 가운데 공학교육은 연구중심 3개 대학과 응용·실무 중심의 29개 기술대학이 맡고 있다. 에스포시에는 기술대학인 에브텍과 연구중심인 헬싱키공대(HUT)가 있다.

▽기업 중심 교과과정=에브텍공대 본관 2층에서 조르겐 에릭슨 교수의 이동통신 연구실에 들어서니 4명의 학생이 노키아의 신형 휴대전화를 시험하고 있다. 4학년인 삼포 쿠이스카는 이 연구실 업무 덕분에 졸업 요건을 채울 수 있게 됐다. 에브텍공대는 기업체 인턴이나 대학 내 기업 프로젝트 등을 1년 이상 해야 졸업을 할 수 있기 때문.

교과과정은 4년간 160학점 가운데 외국어 기초과학 교양 등이 44학점, 기업실습 20학점을 포함한 116학점이 전공관련 과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동통신 연구실 맞은편 강의실에서는 영국 출신의 닐 스미 교수가 경영리더십을 강의하고 있었다. 기업에 입사한 후 조직생활에 적응하는 방법과 경영마인드가 강의 주제였다. 공학도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기술적인 부분만이 아니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에브텍의 정보공학과 주임교수인 테로 누르미넨 박사가 “대학의 고객은 기업”이라고 강조한 말이 실감났다.

HUT 타파니 조키넨 교수도 “공학교육은 과학적 지식을 현장(기업)에서 응용 가능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는 기업 전문가=학생이 3000명인 에브텍의 교수는 300명. 이 가운데 120명은 정식 교수이고 180명은 기업체에 근무하는 겸임교수다. 대부분의 공대는 여기처럼 전임교수보다 겸임교수가 훨씬 많다.

1층 정보공학 실험실에서 장비를 다루는 발토넨 페카 교수는 HUT 박사로 세계적 기계업체인 ABB에서 12년간 근무한 후 학교로 왔다.

에브텍의 교수 조건은 석사 이상에 현장 경력 3년 이상. 실제로는 대부분의 교수가 기업에서 10년 이상 일했다.

주시 리에시오 HUT 전기통신공학부 교수는 “핀란드에서는 기업 현장을 거치지 않고 박사학위만으로는 공대 교수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누르미넨 교수는 “교수진의 풍부한 기업 경험이 현장 중심 교육과 산학 연계의 포인트”라며 “대학 교수 임용이나 평가 때도 기업인이 참여한다”고 소개했다.

노키아의 수비 힐투넨 대학협력과장은 “교수들은 기업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인재를 길러서 쓴다=올 여름 에브텍을 졸업한 미코 토이칼라는 콘텐츠 전달망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논문 덕분에 토이칼라씨는 졸업과 함께 디지털방송서비스 업체인 디지타사(社)에 취직했다.

라이모 칸톨라 HUT 국제연구담당 교수는 “졸업생의 90%가 기업을 위해 논문을 쓴다”고 말했다.

HUT의 대학 게시판이나 인터넷 홈페이지는 기업이 제시한 연구과제로 가득 차 있다. 교수가 기업으로부터 제시받은 과제를 학생에게 주기도 한다.

HUT에서 석사논문을 쓰는 기간은 보통 6∼8개월. 이 기간 기업은 해당 과제로 논문을 쓰는 학생에게 연구비를 제공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취업으로 연결된다.

기업과 대학의 공동 연구 및 산업현장 교육(인턴십)도 미리 인재를 기르는 방법이다.

이동통신업체 인텔리아소네라사(社)는 20개 대학과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첨단 장비를 갖춘 본사 신기술 실험실을 학생들에게도 개방한다.

이 회사의 리스토 레이니카이넨 이사는 “다양한 산학 공동 연구를 통해 기업과 학생들이 서로를 잘 알게 된다”며 “적합한 학생을 고르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미래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노키아는 연간 2000여명의 학생을 산업 현장에서 인턴으로 쓰고 있다. 학생들의 인턴 기간은 2∼12개월. 충분히 현장을 배울 만한 기간이다.

에브텍의 에릭슨 교수는 “공동 연구와 자금 지원, 인턴십, 시설 제공 등은 미래 인재를 얻기 위한 기업의 당연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대학과 기업은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11월 중순 HUT 전기통신공학관 2층에서는 산학 정례 모임이 열렸다.

매달 한번 HUT와 공동 연구를 하는 기업인, 교수, 국가기술청(TEKES) 관계자가 모여 산학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연구 및 인재 수요를 놓고 토론한다.

건물 설비업체인 엔스토사(社) 마티 래 이사는 “주요 연구를 대학에 맡겨 아웃소싱한다”면서 “대학이 내놓는 연구결과에 대체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국가기술청은 응용연구를 지원하며, 기업과 대학이 함께하는 프로젝트에만 예산을 준다. 기초과학 지원은 핀란드아카데미가 맡는다.

마르쿠 비르타넨 국가기술청 프로그램 매니저는 “자원과 인력이 부족한 나라가 기술경쟁력을 가지려면 산학 협동밖에 없다”고 말했다.

헬싱키=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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