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끌려간 아들-남편 보고싶소”할머니들 恨맺힌 단식농성

  • 입력 2003년 12월 5일 2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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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오대양호 납치사건으로 두 아들을 동시에 잃은 박규순 할머니(78·왼쪽 아래) 등 납북자 가족 9명이 5일 서울 종로구 국가인권위원회 7층 회의실에서 정부의 납북자 송환 노력을 요구하며 사흘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변영욱기자 cut@donga.com
1972년 오대양호 납치사건으로 두 아들을 동시에 잃은 박규순 할머니(78·왼쪽 아래) 등 납북자 가족 9명이 5일 서울 종로구 국가인권위원회 7층 회의실에서 정부의 납북자 송환 노력을 요구하며 사흘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변영욱기자 cut@donga.com
‘사랑하는 납북자여, 이제라도 그립고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꼭! 꼭! 돌아와야 합니다.’

5일 서울 종로구 국가인권위원회 7층 회의실 문에는 이런 구호가 붙어 있었다.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룡 대표(51) 등 회원 11명이 3일 단식농성을 시작하면서 붙여놓은 것이다.

1972년 오대양호 피랍사건으로 두 아들을 동시에 잃은 박규순 할머니(78)는 A4 용지 크기의 아들사진을 목에 걸고 단식 중이다. 사흘째 식사를 하지 않은 박 할머니는 기력이 많이 쇠해 보였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납북자 즉각 송환을 위한 정부의 노력과 납북자가족 지원법 제정.

역시 오대양호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강경순 할머니(75)는 “남편을 잃은 슬픔도 컸지만 자식들이 ‘빨갱이 자식’ 소리를 듣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며 “연좌제에 얽혀 자식들이 취직도 제대로 못했을 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말했다.

간첩이 내려올 때마다 형사들이 집으로 찾아오고 이사할 때마다 신고를 해야 했다는 강 할머니는 “대통령이 우리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고 대책을 마련해주면 여기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1970년 백령도 근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북한 경비정에 납치됐다가 28년 만에 북을 탈출한 이재근씨(66)는 한국에 돌아와 자신 때문에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와 헌병대에 불려 다닌 형의 사연을 듣고 기가 막혔다고 한다.

“늙은 나이에 직업을 다시 구할 수도 없고, 정부로부터 받은 돈은 단돈 3700만원이 전부였고…. 이런 나라를 믿고 목숨을 걸고 북에서 넘어왔나….”

최성룡 대표는 “지난해 11월 인권위에 연좌제 피해보상과 납북자가족 인권침해 진정을 냈지만 1년이 넘도록 아무런 대책이 없다”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납북자 송환과 연좌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는 “19일 이 문제와 관련한 공청회를 열 예정”이라며 “정책권고도 시간이 걸리는 만큼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밝혔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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