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케치]“서울 건축도 사람-문화재 생각할때”

  • 입력 2003년 12월 5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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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역사에 무례한 서울의 건축물!”

최근 한국건축가협회가 서울 도시건축의 문제점을 이같이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서울 도시건축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왜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했을까. 가이드라인을 뒤집어보면 그건 곧 서울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광통관 주변과 스페인 바르셀로나 중세유적 주변 및 미국 뉴욕 옛 AT&T 건물(위쪽부터). 광통관 주변은 대형 고층건물이 광통관보다 도로변으로 튀어나와 시야를 가리고 광통관의 존재를 왜소하게 만들었다. 반면 바르셀로나의 경우 건물 중앙에 통로를 만들어 뒤쪽의 중세건축물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고 뉴욕 AT&T 건물은 1층을 멋지게 꾸며 보행 및 휴식공간으로 개방했다. -사진제공 성균관대 임창복 교수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수많은 고층 건물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1층이 대부분 사무공간이라는 점. 상점도 드물다. 1층 일부를 아케이드 형식으로 개방한 건물은 불과 4, 5곳. 용무가 없는 보행자는 건물에 들어갈 수가 없다. 누군가 “볼 일 없는 사람이 뭣 하러 들어가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건 분명 보행자와 건물의 단절이다.

미국 뉴욕의 옛 AT&T 건물이나 시카고의 일리노이주청사는 이와 다르다. 사람들을 위해 1층을 보행공간으로 꾸며 개방했다. 건물도 훨씬 아름답다.

중앙대 이정형 교수(건축학)의 지적.

“테헤란로 등 주요 거리의 대형건물 1층은 보행자가 접근하기도 어렵고 접근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건물 1층은 사유물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보행자의 접근을 위해 1층에 보행통로나 아케이드, 공공공간을 만들고 대형건물 사이의 공터를 소규모 문화광장으로 조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비록 보행자 공간으로 개방하지 못하더라도 사무공간 대신 상가를 조성하면 사람들이 건물 속으로 들어가 건물과 교감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공간이 되는 거죠. 일본 도쿄의 마루노우치(丸內) 거리는 사무공간으로 쓰던 건물 1층을 상가로 유도해 명소로 각광을 받게 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5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의 광통관(廣通館·1909년 세워진 은행 건물) 주변. 광통관 바로 옆엔 대형 고층건물이 서있다. 고층도 문제지만 건물이 문화재보다 도로변으로 더 튀어나와 문화재를 왜소하게 만들고 시야를 가리고 있다.

종로2가 보신각 주변. 형태 재료는 물론이고 건물 배치에 있어 종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모두 역사 문화재에 대한 무례함이다.

아키플랜종합건축사사무소의 김정훈 소장이 말하는 가이드라인.

“문화재 주변 건물의 외벽에 가볍고 경쾌한 재료를 사용해 문화재를 부각시키거나, 문화재와 유사한 색채 재료를 사용해 조화롭게 꾸며야 합니다. 문화재 옆에 높은 건물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앞쪽은 저층으로 하고 뒤쪽을 고층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문화재를 가리지 않는 시각 통로도 필요하죠.”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보행자거리. 중세 유적 옆에 건물을 지으면서 사람들이 문화재를 볼 수 있도록 건물 중앙에 구멍을 뚫어 시각 통로를 확보했다.

그 현장을 둘러본 성균관대 임창복 교수(건축학).

“우리는 고택도 허는 판인데 역사를 존중하는 그들의 발상이 놀랍습니다. 그건 ‘건물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란 인식 덕분이죠. 서울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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