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84…귀향 (18)

  • 입력 2003년 12월 5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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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리에 도착한 김원봉 장군은 차를 타고 아버지가 계시는 곳까지 갈 수 없다면서 검은 세단에서 내려 연도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부르는 군중과 악수를 나누며 걸었다. 감격한 군중이 송사리떼처럼 장군의 뒤를 따랐다고 한다. 작년 김구 선생의 중매로 민혁당 간부의 딸과 결혼했는데, 첫아들을 낳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의 이름을 따 중근이라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는 간간이 들어왔지만, 엄마를 간병하느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엄마가 죽고 난 지금도. 그렇다면 왜 난, 김원봉 장군의 연설을 들으려고 이렇게 애를 쓰는 것일까?

밀양 제1국민학교 교문에는 의열단이라 쓰인 새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곤봉을 든 청년들이 눈을 번뜩이며 서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간신히 교문 안쪽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 김원봉 만세! 김원봉 장군 만세! 몇 천, 몇 만의 군중이 일제히 두 손을 흔들어댔다.

소진은 교문 옆에 있는 진달래 화단으로 올라가 밀려오는 인파를 피했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연단 근처에 있다가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으며 뒤로 빠져나온 사람을 에워싸고 김원봉 장군이 무슨 말을 했는지 캐묻고 있다.

종남산은 변함이 없다. 남천강도 옛날 그대로다. 그러나 많은 동지들이 고인이 되었고, 민족 독립에 목숨을 걸었던 청년들의 머리카락에도 흰머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은, 누더기를 걸치고 맨발로 걷고 굶주리고 착취당하는 민중이 있다는 점이다.

앗! 오라버니다! 소진은 왕벚나무 가지 뒤로 슬쩍 얼굴을 숨겼다.

“우철아! 키가 남들보다 원체 커서 금방 알아봤다.”

“…너, 우홍이가?”

“그래, 우홍이 맞다.”

“아이고, 하늘이 무심치 않았다, 우홍이 맞네! 살아 있었나! 아이고!”

오라버니는 국방색 인민복과 모자를 쓴 남자의 팔을 잡고 끌어안았다. 둘은 서로의 등을 툭툭 치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것 같았다.

“김원봉 동지한테 소개하고 싶다. 내, 너 얘기 얼마나 많이 한 줄 아나. 동지도 우리 고향의 영웅이라 카더라. 하믄 영웅하고 영웅의 대면이네!”

나는 의열단원의 어깨를 껴안고 걸어가는 오라버니의 뒤를 밟았습니다. 둘은 영남루 계단으로 올라갔습니다. 오라버니는 광복 전에는 일본 사람이 살았는데, 석 달 전에 김원봉 장군의 가족이 이사한 일본 가옥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분명하게 봤습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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