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거의 모든 것의 역사'…여행가가 쓴 '과학 보따리'

  • 입력 2003년 12월 5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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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 저자 빌 브라이슨은 우주의 탄생과 생명체의 진화, 인류의 진화라는 세 겹의 거대한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는 인간을 표현한 컴퓨터그래픽.동아일보 자료사진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 저자 빌 브라이슨은 우주의 탄생과 생명체의 진화, 인류의 진화라는 세 겹의 거대한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는 인간을 표현한 컴퓨터그래픽.동아일보 자료사진
◇거의 모든 것의 역사/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558쪽 2만3000원 까치

저자 빌 브라이슨은 ‘문을 나설 때마다 매력적인 에세이와 함께 돌아온다’는 평을 듣는 미국의 유명한 여행가이자 뛰어난 에세이스트다. 애팔래치아 산맥, 호주,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쓴 그의 영감어린 여행기들은 그 지역을 찾는 여행자들의 필독서다. 전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고 돌아온 그가 3년 동안 준비해 내놓은 최신작은 놀랍게도 ‘과학서’였다.

그는 양성자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쿼크와 퀘이사도 구분할 줄 모르는 ‘과학의 문외한’이었다. 그런 그가 왜 갑자기 500쪽이 넘는 과학서에 도전했던 것일까? 아마도 그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오르면서 이 거대한 산맥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호주 평야에 텐트를 치고 누워 ‘저 수많은 별들은 어디서 만들어져 저렇게 밤하늘에 박히게 되었을까’ 하면서 호기심 어린 밤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 긴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면 내가 정말 궁금한 것들, ‘이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지구 내부는 어떻게 생겼고 그 위에서 살고 있는 생명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해 과학자들이 내놓은 답들을 정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이 탄생하게 됐다.

우주, 지구, 생명, 인간에 대해 그 탄생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긴 진화의 여정을 흥미롭게 기술한 이 책은 교양과학서가 가져야 할 장점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우선 저자는 학술서가 아니라 대중과학서를 비롯해 잡지, 신문, 과학자들과의 인터뷰 등을 참고해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매우 쉽고 친절하게 과학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쪽마다 수많은 에피소드와 과학사의 뒷얘기들이 맛깔스럽게 배치돼 있는 것도 그런 덕분이다.

에세이스트가 쓴 글답게 책에는 인간적인 냄새가 묻어나 있다. 원자나 태양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그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때론 집착했던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으며, 먼저 발견하고도 영어권 저널에 발표하지 않아 인정받지 못한 과학자들에 대한 연민도 잊지 않았다.

또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대체 과학자들은 그런 사실들을 어떻게 알았을까’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특장은 지구의 내부구조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현대인들은 교과서에 실린 지구 내부 그림이 외워야 할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지만, 실제로는 아직 지구 내부에 대해 많이 알려져 있지 못하다. 지표면에 직접 구멍을 뚫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들은 지구 밀도를 계산하고 지진이나 지자기 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론해낸 결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저자는 밝힌다.

다만 에세이스트가 쓴 과학책이다 보니, 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한 점도 있고 쿼크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지구 이야기로 돌아오는 등 구성의 짜임새가 부족하다는 것은 지적할 만하다.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우리를 둘러싼 이 거대한 우주와 지구와 자연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우리가 평생 풀어야 할 이 숙제를 위해, 방금 우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특급 여행가의 에세이에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정재승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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