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언론통제와 신문의 저항'…암울한 5공

  • 입력 2003년 12월 5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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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통제와 시민의 저항/이채주 지음 /479쪽 2만원 나남출판

‘아무도 모르게 죽여버릴 수 있다는 말에 소름이 끼쳤다. 책임자급의 사나이는 주황빛 전등 아래에서 마치 거인처럼 커 보였다.…이 무렵 김충식 기자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옆방에서 들려왔다. 왜 이러십니까 하고 부르짖는 김 기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1985년 8월 29일과 30일에 걸쳐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이었던 저자와 이상하 정치부장, 김충식 정치부 기자가 안기부로 연행됐다. 85년 8월 29일자 2판에 실린 ‘불시착 중공기 조종사 대만 보내기로’란 기사가 정부발표 이전에 기사화돼 엠바고(보도관제)를 위반했다는 게 구실이었다.

이 책은 ‘암울했던 시절 어느 편집국장 이야기’라는 부제 그대로 5공 시절인 1983년 5월부터 1987년 1월까지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임한 저자가 당시를 회고한 기록이다. 저자는 편집국장으로서 남산(안기부)에 수차례 끌려갔던 경험뿐 아니라 당시의 신문기사, 동아일보 사내보 ‘동우(東友)’지에 실린 기자들의 취재후기, 언론관련 국내외 성명서 등 자료를 통해 5공 당시 암울했던 언론 상황을 실증적으로 재현했다.

저자는 중공민항기 춘천 불시착, KAL기 소(蘇)미사일 피격,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2·12총선, 중공폭격기 이리 불시착,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독립기념관 화재사건 등과 관련된 보도에 당국의 ‘보도지침’이 얼마나 집요했으며 신문은 어떻게 저항했는지, 또 그 대가는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꼼꼼히 기억해낸다.

그중 저자가 민주화의 분수령이 된 ‘세 차례의 큰 바람’으로 꼽는 대표적 사건은 필리핀의 민주혁명 황색바람, 2·12총선과 신민당의 돌풍, KBS 시청료 납부거부 운동과 관련된 보도였다. 당시는 “1단 기사가 거리의 정치를 지배했다”고 할 정도로 단 한 줄의 시위기사 속에서도 민주 회복의 열망을 확인하고 희망을 잃지 않았던 시대였다.

그는 특히 KBS 시청료 납부거부 운동에 대해 “전제정치는 국민들이 ‘공포의 우리’ 속에 갇혀 있을 때는 무너지지 않는다. 국민들의 조롱감이 될 때, 비웃음의 대상이 될 때 비로소 붕괴하는 것이다. KBS를 통한 근엄한 모습의 전두환 대통령의 상징 조작과 권위 창출은 완전히 실패했고 오히려 조롱감이 됐다. 권위의 붕괴가 TV에서 시작됐다”고 회고했다.

저자가 편집국장 재직 당시 동료들에게 즐겨 인용하던 경구는 로마 장군 파비우스의 ‘공격할 때는 매우 격렬하게 공격한다(When I strike, I strike hard)’였다. 정권의 탄압에 맞서기로 작정했다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공격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5공의 보도지침은 무시무시했지만 모두 지켜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는 정부와 언론의 ‘게릴라전’의 시대였다. 정부가 강압적으로 나오면 일단 물러서고, 허점이 보이면 보도지침을 무시하고 언론의 자유를 위한 공격을 집중적으로 퍼부었던 시대였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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