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 입력 2003년 12월 5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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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저자인 나피시는 이슬람교혁명 이후의 이란이 90년대 들어 완화된 통치를 펴고 있지만 여성에 대한 억압은 변치 않았다고 말한다. 2001년 미국 9·11 테러 직후 ‘인류애적 동기’에서 추모의 촛불을 켜고 있는 테헤란 여성들.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저자인 나피시는 이슬람교혁명 이후의 이란이 90년대 들어 완화된 통치를 펴고 있지만 여성에 대한 억압은 변치 않았다고 말한다. 2001년 미국 9·11 테러 직후 ‘인류애적 동기’에서 추모의 촛불을 켜고 있는 테헤란 여성들.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아자르 나피시 지음 이소영 외 옮김

/678쪽 1만8000원 한숲

신이 다스리는 나라 신정국가(神政國家),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1995년.

신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공간이 있었다. 나라 전체를 성역(聖域)으로 만든 사람들에게는 죄악의 소굴이었겠지만, 모인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성역이었다. 2년 동안 계속된 모임에서 일곱 명의 여자들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제인 오스틴,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들을 읽고 토론했다.

“불륜의 관계를 괜찮다고 말해야 하나요?”

“삶에는 어떤 고약한 공간이 있어야 해요. 우리가 예의 없이 행동할 수 있는 곳 말예요.”

만나, 마쉬드, 야시…. 온몸의 윤곽을 천으로 둘러쌌을 때 그들은 익명의 ‘여자’일 뿐이었다. 서로 만나 차도르를 벗어던지면서 그들은 익명을 벗어던졌고, 자기만의 미소와 관심사를, 자기를 호명(呼名)해 줄 눈길들을 발견했다.

저자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조국의 테헤란대 교수로 취임한 79년, 이슬람교 신정이 수립됐다. 차도르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2년 만에 강단에서 쫓겨났던 저자는 6년 뒤 ‘차도르를 쓰고’ 알라메대 교수가 됐다. 95년 스스로의 선택으로 다시 강단을 떠난 저자는 ‘연약함과 용기가 교묘하게 혼합된 고독한 영혼의 소유자’인 여섯 명의 젊은 여성을 골라 매주 목요일 자신의 집에서 문학토론 모임을 열었다.

이 책은 95년의 토론 모임에서 출발, 79년 회교혁명기로 거슬러 올라간 뒤 이란-이라크전이 벌어졌던 80년대를 지나 다시 토론 모임으로 되돌아온다.

혼란의 와중에 돌아온 조국. 그러나 문학을 논하기에 현실은 엄혹했다. 미국 담배를 피운 젊은이가 처형되고, 캠퍼스에서 사과를 먹는 여학생들은 ‘유혹적’이라는 이유로 규율부의 단속을 받는다. 소설 속의 ‘포도주’라는 단어마저 지워야 하는 상황에서 신임 나피시 교수는 ‘위대한 개츠비’를 강의하지만,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학생의 문제제기로 ‘개츠비’를 모의법정에 세운다.

“이것은 우리 문화에 대한 강간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다른 남자의 아내를 탈취하고 섹스를 가르치고….”(원리주의자)

“간통이 좋은지 나쁜지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간통과 결혼 같은 문제들이 얼마나 복잡한지 배우기 위해 ‘개츠비’를 읽는 겁니다.”(교수)

이런 순진한 시선들과의 만남을 통해, 억압이 없는 사회에서였다면 오히려 스쳐지나갔을 질문들이 숙고된다. 문학은 현실의 복사인가? 아니다. 우리가 문학에서 구하는 것은 복제된 현실이 아니라 진실을 찾는 시각이다. 그렇다면, 잔인하거나 슬픈 이야기를 읽으며 문학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죄스러운 일인가?

‘위대한 개츠비’나 ‘롤리타’를 토론 주제로 끌어들인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열두 살짜리 롤리타의 진실과 욕망을 억압하는 험버트에게서 저자는 사악한 전체주의의 일면을 본다. 과거를 반복해 꿈을 이루려 한 개츠비에게서는 집단적 과거를 부활시켜 개개인의 삶을 파멸시킨 이슬람교혁명의 허망함을 읽어낸다.

“혁명 후의 이란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혐오하는 남자와 관계를 갖는 것과 같았다. 머리를 백지상태로 만들고, 끊임없이 마음속으로 다른 곳이라고 가장해야만 했다.”

저자는 97년 미국으로 이주, 존스홉킨스대에서 세 번째 영문학 교수의 삶을 시작했다. 독서토론 모임의 학생 중 셋은 서방으로 이주했고 나머지 학생들은 만남을 이어나갔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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