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용성/정년제, 없애는게 낫다

  • 입력 2003년 12월 4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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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인구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국가로 꼽힌다. 출산율 또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어 앞으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및 노령인구 부양 문제가 중요한 사회현안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노인 일자리를 늘리고 노인부양 부담을 줄이기 위해 현행 60세인 근로자의 정년을 65세 내외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정년퇴직 1000명중 4명뿐 ▼

그러나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저절로 상승하는 지금과 같은 연공서열형 임금제도를 그대로 둔 채 정년만 연장했을 때 그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과연 누가 될 것인지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년 연장론이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는 일부 기업의 종업원 또는 제도적으로 고용이 보장되는 일부 계층을 위한 노후복지수단으로 제기돼선 곤란하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정년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근래 들어 정년제는 이름뿐인 제도가 됐다. 최근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퇴직자 가운데 정년퇴직으로 직장을 그만둔 근로자는 1000명 중 4명에 불과하다. 하물며 정년을 더 늘린다고 했을 때 연장된 정년제도의 혜택을 보는 근로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정년제가 이처럼 유명무실해진 이유는 바로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늘어나는 연공서열형 임금제도 때문이다. 신입사원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20년 이상 근속 생산직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우리나라의 경우 186.4다. 이에 비해 스웨덴 112.4, 영국 119.6, 이탈리아 122.7, 독일 123.9, 프랑스 150.1 등 유럽 5개국 평균이 125.7 수준에 불과하고 미국도 110∼125 수준이다. 근속 연수에 따른 임금 상승폭이 우리가 구미국가보다 3∼8배 높은 것이다.

동일한 업무에서 유사한 기능을 하는 사람들의 임금이 신참인지 장기근속자인지에 따라 2배 가까이 차이난다면 기업으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인력조정을 하게 되면 장기근속자들을 주 대상으로 삼는다. 결국 정년퇴직제도는 이름뿐인 제도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근로자의 임금이 직무의 가치와 종업원이 지닌 생산성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정된다면 기업들은 신참보다 경험이 축적된 장기근속자를 오히려 선호할 것이다. 육체적인 문제만 없다면 정년이 65세가 되든, 70세가 되든 개의치 않을 것이다. 공장 자동화가 많이 보급된 요즘에는 생산직이라고 해도 육체적인 노동 강도가 훨씬 낮아져 고령인력이 근무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업장이 많아졌다.

미국의 경우 근속 연수가 아니라 직무의 질과 기능 수준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직무급 임금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업들은 경영 악화로 고용조정을 할 경우 최근 입사자부터 먼저 해고하는 관행이 정착돼 있어 장기근속자들의 고용이 젊은층보다 안정돼 있다.

우리나라도 연공서열형 임금제도를 폐지하고 종업원의 능력 및 직무수준에 따른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일부에서는 임금피크제를 고령인력의 일자리 문제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기도 하지만 우리 정서에서 임금 삭감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설령 임금피크제 도입에 성공한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연공서열형 임금제의 부담을 일부 완화한 것에 불과하고 그 불합리한 임금체계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원천적인 해결책이라고 할 수 없다.

▼생산성따른 임금체계 도입해야 ▼

직무급제 도입은 기업 인건비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젊은층 근로자와 장기근속 근로자간의 임금배분을 합리적으로 하자는 취지다. 활동적이고 생산성도 높은 젊은 근로자가 단지 근속 연수가 적다는 이유로 장기근속자의 반밖에 임금을 못 받는 제도는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

직무급제가 정착되면 기업들은 연공서열형 임금제도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어 신규인력 채용에 적극 나서게 돼 청년실업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신입사원의 임금이 지금보다는 많이 올라가기 때문에 생산현장에 젊은이들의 지원도 늘어나 산업현장의 인력 충원이 보다 수월해지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박용성 대한상광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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