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정준하 "나만큼 똑부러진 바보 보셨나요"

  • 입력 2003년 12월 4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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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어∼요”라며 ‘휴대폰 개그’를 선보이는 개그맨 정준하. 그는 자신이 영구 맹구와 달리 자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강요하는 ‘독한 바보’라고 ‘주장’했다.-박주일기자
“휴대폰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어∼요”라며 ‘휴대폰 개그’를 선보이는 개그맨 정준하. 그는 자신이 영구 맹구와 달리 자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강요하는 ‘독한 바보’라고 ‘주장’했다.-박주일기자
“느낌이 ‘독’하대요.”

개그맨 정준하(32)의 별명은 ‘독한 맛에 6주’다. 그의 개그가 재미있지만 이미지가 강렬하고 독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가 나오는 코너는 ‘6주’를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요즘 ‘마(痲)의 6주’를 훌쩍 넘기며 늦깎이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5월 초 시작된 MBC ‘코미디 하우스’(토 오후 7시)의 ‘노(No) 브레인 서바이버’ 코너가 8개월째 롱런하며 간판 코너로 자리 잡은 것.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버’를 패러디한 이 코너는 ‘지능은커녕 머리가 없어도 된다’고 표방하는 바보들의 퀴즈쇼다.

정준하는 바보연기를 선보이며 “내가 못 맞출 거라는 편견을 버려” “휴대폰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어∼요” “오케이, 오늘 흥미진진하겠는데. 히어위고” “휴대폰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등 유행어를 쏟아낸다. 2일 현재 인터넷 검색 사이트 ‘네이버’에서 개그맨 부문 검색어 1위.

“전 ‘그냥’ 바보와 달라요. ‘논리적인’ 바보죠.”(웃음)

정준하는 자신이 영구(심형래) 맹구(이창훈)의 바보 계보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고 밝힌다. 영구와 맹구는 스스로 자신 없어 하고 주저하는 소시민적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들에게 상대적 우월감을 심어주는데 반해, 자신은 허황되지만 논리적이고 집요하게 뭔가를 주장하는 ‘능동적 바보’라는 것.

“홍시가 얼마나 섹시한지 몰라? 혼자 어떤 생각을 했으면 그렇게 빨갛게 달아올랐겠어. 홍시가 섹시하지 않다는 편견을 버리라고!”(11월 22일 방송)

‘바보’지만 그는 “편견을 버려” “인정하라고” “전 일부러 (문제를) 안 풀었습니다. 토끼에 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요”라고 주장한다. ‘스피드 퀴즈’를 통해 정준하는 논리적인 끈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미지의 충돌’이 빚어지는 대답을 속사포처럼 쏴댄다. 과장되기보단 지능적이다.

“(문제) 새하얀 피부로 유명한 ‘대장금’의 주인공 이름은?” “(답) 앙드레 김.”

“(문제) 크리스마스 때 굴뚝을 타고 와 선물을 주고 가는 사람은?” “(답) 통아저씨.”

“(문제) 전구를 발명한 발명가는?” “(답) 응삼이.”

“‘흥부 놀부’에서 나쁜 사람 이름은?”이란 질문에 “둘 중 하나”라고 답하고, “거북선을 만든 사람은?”이란 질문에는 “여러 명. 이순신이 자기 혼자 다 만들었겠냐고?”하고 되묻는다. 그는 이렇게 ‘사지선다식’ 문제에 휘둘리고 살아온 자신의 삶을 스스로 비꼰다. (4대 독자로 병역이 면제된 그는 서울 강서고 졸업 후 4수를 하다가 사회에 뛰어들었다.)

“코미디 쪽 사람들은 ‘이미지 상한다’면서 남 괴롭히는 역을 이젠 피하라고 조언해요. 반면 드라마 쪽 사람들은 ‘이제 바보연기 그만할 때 되지 않았느냐’고 하고요.”

정준하는 개그맨 이휘재의 로드 매니저를 지내다가 PD들의 눈에 띄어 1995년 MBC ‘테마극장’으로 데뷔했다. 첫 역할은 레스토랑 로비에서 재떨이를 들고 이휘재가 터는 담뱃재를 받아내는 웨이터였다. 때밀이 폭주족 도둑 개장수 등으로 코믹 드라마에 단역 출연하다가, 데뷔 9년 만에 SBS 주말드라마 ‘천년지애’(5월 종영)에 난폭하고도 코믹한 조폭 행동대장으로 출연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MBC 주말드라마 ‘회전목마’에서 주인공 진교(수애)를 호시탐탐 노리는 기둥서방 ‘인철’로 출연하며 연기자로도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여세를 몰아 내주 크랭크인하는 영화 ‘늑대의 유혹’에도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건달로 출연한다.

“예전엔 어떤 프로그램에서 무슨 짓을 해도 사람들이 몰랐어요. 지금은 재미없는 얘기를 해도 사람들이 배꼽 잡고 쓰러져요. 전 매니저를 해봐서 인기의 본질을 알죠. ‘내년 1월엔 아무도 날 찾지 않으면 어쩌지’하며 늘 강박에 시달려요.”

TV, 라디오 출연으로 하루 2∼3시간을 자면서 4, 5개의 ‘살인 스케줄’을 감당하고 있다. 서울 강남에 가라오케 2개를 운영 중인 그는 연예기획사를 차릴 계획을 세우며 사업가로도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너 커서 뭐 될래?’란 핀잔 섞인 말을 지긋지긋하게 들어왔죠. 이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어요.”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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