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지하 철길 400리 걸으며 안전점검”

  • 입력 2003년 12월 4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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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시철도공사 제타룡 사장이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수색역 사이의 철길을 걷고 있다. -사진제공 서울도시철도공사
서울도시철도공사 제타룡 사장이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수색역 사이의 철길을 걷고 있다. -사진제공 서울도시철도공사
“철길은 바로 지하철의 젖줄입니다. 철도공사 사장이 철길을 걸으며 점검하는 게 뭐가 이상합니까.”

서울도시철도공사 제타룡(諸他龍·65) 사장이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 60대의 나이에 지하철 5∼8호선 총 152km의 철길을 걸어서 누빈 것. 지난해 11월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시작해 1년에 걸쳐 장장 400리를 걸은 것이다.

처음 제 사장이 철길걷기에 나설 때만 해도 직원들은 한두 번 그러다 말려니 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제 사장도 공기도 탁하고 소음도 심한 터널을 지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겨울엔 걸을 만하죠. 여름엔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됩니다. 거기에 지하철이 지나가면서 먼지라도 일으키고 나면 입안이 온통 시꺼멓게 변합니다.”

철길걷기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9월 제 사장이 취임해 매주 금요일을 ‘안전의 날’로 정하면서부터였다. 금요일마다 오후에 철길을 걸으며 시민들을 안전하게 수송해 달라고 기원한 것. 실제로 제 사장의 철길걷기 이후 지하철의 기계 고장이 54%나 줄었다.

제 사장은 서울시 교통국장과 감사실장 시절에도 솔선수범하기로 유명했다. 워낙 꼼꼼한 데다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라 따르는 아랫사람도 많았다는 게 시 관계자의 귀띔.

제 사장의 ‘현장체험’은 단순히 철길걷기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철길을 걸으면서 철로 상태를 직원들과 꼼꼼히 체크했고, 지하철 운전법을 배우고 역사에서 표도 팔아 봤다.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필요한 것이 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직원들의 요구가 충족될 때 시민들을 위한 최고의 서비스가 나올 수 있거든요.”

제 사장의 철길걷기는 5일 지하철 5호선 방화역에서 드디어 끝을 맺는다. 일본 지하철에서 “일본 지하철 100년 역사에도 그런 일은 없었다”며 축하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다음 주 금요일에도 철길 점검은 계속할 겁니다. 안전한 지하철 운행만 계속된다면 이 정도 고생이야 아무 것도 아니죠.”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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