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탐험 운행기]11월30일 첫째날

  • 입력 2003년 12월 4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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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각자의 썰매를 끌고 운행을 시작한 탐험대원들
남쪽으로 각자의 썰매를 끌고 운행을 시작한 탐험대원들
오전 10시15분 박영석 탐험대장과 4명의 대원, 구자준 원정대장 전창 기자 등 모두 7명이 남극점 원정대 출발점인 허큘리스에 경비행기인 트윈오터(날개에 프로펠러가 하나씩 달린 경비행기)편으로 도착했다.

하루 종일 해가 머리 위를 맴도는 백야현상이 시작돼 해는 말 그대로 머리 위를 맴돌고 있다. 도착한 날 바람이 없어서인지 기온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스하게 느껴진다. 영하 12도와 영하 17도 사이. 하얀 설원과 맞닿은 하늘은 에머랄드 빛깔처럼 푸른빛을 띠고 있고 양털구름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조각구름이 해를 가리면 금새 기온이 내려가고 해가 구름을 벗어나면 다시 기온이 올라간다.

운행시작 전 격려차 오신 구자준 대장님, 전창기자와 기념촬영을 했다. 트윈오터로 되돌아가는 두 분을 배웅할 겨를도 없이 탐험대는 남쪽으로 각자의 썰매를 끌고 운행을 시작한다. 극지로 향한 대원들에게 트윈오터가 두 바퀴 공중 선회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첫 출발은 비교적 수월했다. 평지나 다름없는 설원 위를 140kg의 썰매가 그래도 잘 따라와 준다. 앞에 나선 박대장은 설원 위를 이리저리 살펴가며 썰매가 잘 끌리는 굳은 눈을 찾아 방향을 잡아나간다. 무슨 일이든 첫날이 가장 힘든 법이다. 남극점 원정을 준비하면서 대원 모두 남극의 극한기온에 대비해 체중을 8내지 10kg정도 불려 온 터라 몸이 둔할 수밖에 없다. 이치상 대원은 아래 위 검은 옷차림으로 흑곰을 연상케 한다.

두 시간 정도 걷자 몸에서 땀이 흐른다. 아무리 바람 없는 날이라도 극지는 극지인 모양이다. 금새 땀이 싸늘하게 식어 한기가 느껴지자 모두들 옷을 여미고 보온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첫 휴식의 달콤함도 잠시, 운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멀게 보이던 언덕이 눈앞에 다가왔다. 원정대가 어쩔 수 없이 올라야하는 길이다. 숨이 차오른다. 본격적으로 썰매 하중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중력은 썰매를 아래쪽으로 당기고 탐험대원들은 기를 쓰며 앞으로, 언덕 위쪽으로 썰매를 잡아끈다. 그렇게 세 시간을 악전고투한 끝에 언덕을 올라섰다.

언덕위로는 경사가 많이 죽었지만 그래도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진다. 줄곧 선두에 선 박대장을 앞에 두고 네명의 대원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앞사람의 썰매 자국을 묵묵히 뒤따른다.

오후 3시, 예고 없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바람의 방향은 남쪽으로 치우친 남동풍, 거의 정면에서 불어오는 마파람이다. 초속 5m정도지만 무거운 썰매를 끌며 설사면을 오르는 대원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그래도 이만한 바람이면 양호하다. 남극의 대명사인 블리자드(초속 14m이상의 폭풍설)가 불면 속수무책이다. 바람은 쌓여있던 눈가루를 날린다. 그 모습은 뱀이 빠르게 기어가는 모양과 흡사하다. 그런 형태로 바람에 깎인 눈이 설사면에 새겨놓은 무늬가 아름답다.

출발할 때 방향잡이로 보아둔 작은 암봉(누나타크;nunatak)이 어느새 원정대 옆으로 와 있다. 앞서가던 박대장이 운행을 멈추고 대원들을 기다린다. 이현조, 오희준, 이치상 대원이 박대장과 합류했지만 강철원 대원의 모습이 언덕 아래쪽에서 보이지 않는다. 첫 운행에 많이 힘들었나보다.

오후 5시, 1시간 정도 운행을 더 할 계획이었지만 박대장이 스톱 명령을 내렸다. 뒤떨어진 강철원 대원을 기다리며 그 자리에 남극탐험 첫날의 캠프를 만들 것을 지시한다.

바람이 불면 기온이 급강하한다. 서둘러 텐트를 설치한다.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텐트 본체를 스크류(나사형태로 얼음이나 단단한 눈에 박는 기구)로 고정시키고 플라이를 씌운 후 썰매를 지지대 삼아 단단히 고정시킨다.

텐트가 완성될 무렵 강대원이 도착한다. 박대장은 모든 대원이 도착하자 짧은 말로 대원들을 격려한다.

텐트 안, 바람 부는 밖과는 딴판이다. 버너를 켜고 물을 끓이는 한편 대원들 모두 옷을 벗고 젖은 양말을 벗어 텐트 안에 걸어 놓는다. 오희준 대원은 조금이라도 빨리 대원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기 위해 분주하다. 이현조 대원이 도와 밖에서 얼음을 깨오고 물을 끓인다. 운행 중 눈과 얼음을 입에 넣고 녹여 삼키며 갈증을 달래던 대원들은 물이 만들어지자 쉴 새 없이 마셔댄다. 남극은 전혀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있다. 눈과 얼음, 그것으로 만든 물은 히말라야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단맛이 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오희준 대원이 정성껏 만든 찹쌀죽은 첫 운행으로 지쳐 입맛이 떨어진 대원들도 먹을만 했다. 정상욱 선배 형수님이 입맛 떨어질 때 먹으라고 싸주신 볶음고추장은 원정기간 내내 최고 인기식품이 될 것 같다. 식사를 마치자 자연스럽게 자리가 정해지고 차례로 잠자리에 든다. 아무도 말이 없다. 시간은 밤이지만 해는 낮과 반대 위치에서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남극점 원정대 이치상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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