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이야기]도쿄/“아이돌 그룹? 완전히 합창단이네”

  • 입력 2003년 12월 4일 17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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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새로운 아이돌 그룹 다리안걸스는 16∼21세의 중국인 15명으로 구성됐으며 4각의 링 위에서 멤버들이 댄스를 겸한 레슬링 시합을 벌이면서 노래를 부르는 독특한 방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사진제공 아사히신문
일본의 새로운 아이돌 그룹 다리안걸스는 16∼21세의 중국인 15명으로 구성됐으며 4각의 링 위에서 멤버들이 댄스를 겸한 레슬링 시합을 벌이면서 노래를 부르는 독특한 방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사진제공 아사히신문
‘아이돌의 세계에서 개인은 없다. 치밀한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그룹만이 있을 뿐이다.’

갈수록 대형스타의 출현이 줄어들어 고민하고 있는 일본 가요계에서 최소 10명 이상이 참가하는 ‘인해전술’식 아이돌 만들기가 유행이다.

과거에는 ‘아이돌 그룹’이라고 해봤자 4, 5명 정도가 고작이고 멤버의 개인기가 인기를 좌우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개인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멤버가 등장해 그룹의 이미지만을 만들어간다.

그중 몇 사람이 그룹을 탈퇴하고 다른 멤버가 끼어들어도 그룹 유지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혹시 그룹 인기가 떨어지면 일부 멤버를 교체해 인기를 끌어올리기도 한다. 또 운이 좋으면 이중 대형 슈퍼스타가 탄생할지도 모른다고 기획사들은 기대하고 있다.

90년대 말 일본의 아이돌 붐을 다시 일으킨 가수그룹 모닝무스메.사진제공 아사히신문

○ 모닝 무스메의 변신 몸부림

짧은 치마, 깜찍한 춤, 앳된 얼굴의 소녀 아이돌은 ‘만들어진 스타’라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70년대 중반 이후 30년 가까이 일본의 대중문화를 상징해 왔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아이돌 스타는 솔로나 듀엣이 대부분이었고 멤버 수가 많아도 5명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1999년 인기 소녀그룹 ‘모닝무스메(Morning娘·아침의 소녀들)이 등장하면서 아이돌의 세계에 변화가 시작됐다. 10대 소녀 10여명으로 구성된 모닝무스메가 인형을 연상시키는 깜찍한 용모에 발랄한 댄스를 선보이자 한동안 주춤했던 아이돌 붐이 불길처럼 되살아났다.

그런 모닝무스메가 올해 초 오디션을 통해 또 다시 새 멤버 3명을 추가로 받아들였다. 도쿄(東京) 출신의 14세 소녀와 후쿠오카(福岡)현, 야마구치(山口)현에서 스타의 꿈을 품고 상경한 13세 소녀 2명이 발탁됐다. 이들의 가세로 멤버 수는 창단후 가장 많은 16명으로 늘었고 평균 연령은 16.6세로 낮아졌다.

이는 무닝무스메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평을 듣고 있기 때문에 기획사가 단행한 고육지책. 지난해 선보인 모닝무스메의 싱글 판매량은 44만부→31만부→23만부로 내놓을 때마다 10만부가량씩 줄어들었다.

어차피 기획과 훈련으로 만들어진 스타인 만큼 기획사로서는 그룹을 해체하지 않는 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 회사측은 팬들의 관심을 되찾는 방법으로 기존 멤버와는 다른 새 얼굴을 충원하는 쪽을 택했다.

○ “멤버를 늘려라” 아이돌 그룹의 생존전략

8월에 데뷔한 ‘미소녀클럽 21’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10∼18세의 소녀 21명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데뷔한 지 3개월 밖에 안됐지만 TV 정규방송에 고정 출연하는 등 모닝무스메의 뒤를 이을 차세대 아이돌로 주목받고 있다.

아사히신문에서 팝음악을 담당하는 니시 마사유키(西正之) 기자는 일본 아이돌 그룹의 변화상을 집약한 사례로 이들을 꼽는다.

21명의 멤버는 지난해와 올해 실시된 ‘전일본 미소녀 콘테스트’에서 선발됐다. 전원이 한꺼번에 출연하는 경우는 드물고 프로그램이나 공연 성격에 따라 4, 5명씩 팀을 짜서 나가거나 가창력을 인정받은 멤버들이 솔로로도 얼굴을 비친다. 앞으로는 앨범을 낼 때도 솔로, 듀엣, 트리오, 그룹 등 다양한 형태로 등장시켜 개개인의 상품성을 내세운다는 게 기획사측의 복안.

아이돌 그룹이 이처럼 ‘인해전술’을 택하는 것은 엔터테인먼트계의 변화가 워낙 빨라 시장이 어떤 스타를 원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팬들의 변덕도 심하기 때문이다. 콘테스트를 거쳐 선발하는 시스템은 가장 중요한 고객인 초중학교 여학생들에게 ‘나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줘 이들을 아이돌 시장에 붙들어두는 데도 기여한다.

한 연예기획회사 사장은 “21명 중 한 명이라도 ‘슈퍼 아이돌’이 탄생한다면 대성공”이라고 말했다. 21명에 들어간 것은 말 그대로 예선을 통과했다는 의미일 뿐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라는 것이다.

○ 중국 아이돌의 일본 진출

도쿄 해안의 데이트코스로 유명한 오다이바에서는 10월부터 ‘다리안걸스’라는 아이돌 그룹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다른 그룹과 마찬가지로 16∼21세의 15명으로 이뤄졌지만 멤버 전원이 중국 다롄(大連)에서 스카우트돼 일본에 건너왔다는 점이 특이하다.

다리안걸스의 공연은 4각의 링 위에서 5명이 댄스로 분위기를 고조시킨 뒤 멤버끼리 레슬링 시합을 벌이면서 간간이 노래를 선보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외국 출신의 후발주자라는 약점을 색다른 공연으로 커버한 덕분에 인기가 서서히 오르고 있다.

전통악기와 팝의 결합으로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는 ‘여자십이락방(女子十二樂坊)’도 멤버 12명, 평균 연령 23세의 중국 여성그룹이다. CD와 DVD를 세트로 선보인 데뷔 앨범은 100만장이나 팔렸다. 국적은 중국이지만 소속사는 일본이라는 점에 걸맞게 ‘지상의 별’ ‘세계에 하나뿐인 꽃’ 등 일본의 히트곡을 담아 일본 시장을 겨냥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출신 아이돌의 잇단 등장이 동아시아 음반시장의 통합에 대비한 일본 연예기획업계의 새 시도라고 보고 있다. 이미 일본의 팬들은 한국가수 보아의 노래를 들으면서 음악 자체에 매료될 뿐 가수의 국적은 의식하지 않는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한국의 아이돌이 일본에서 통할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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