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의 현장체험]안락사前 강아지의 눈빛을 보셨나요?

  • 입력 2003년 12월 4일 16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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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를 받기 위해 격리된 강아지. 일부에서는 안락사가 잔인한 행위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버려진 채 떠돌다가 차에 치이거나 식용으로 잡혀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비록 사람을 위한 애완견이지만 최소한 생명의 존귀함을 안다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돌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치료를 받기 위해 격리된 강아지. 일부에서는 안락사가 잔인한 행위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버려진 채 떠돌다가 차에 치이거나 식용으로 잡혀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비록 사람을 위한 애완견이지만 최소한 생명의 존귀함을 안다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돌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삶과 죽음의 경계는 불과 2, 3초.

놈은 그렇게 떠났다.

혈관을 파고드는 주사액의 고통도 모른 채….

경기 양주군 남면 동물구조관리협회. 버려지거나 길 잃은 개들이 잠시 머무는 곳. 일부는 입양되고 또 일부는 주인을 찾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승을 떠나는 곳이기도 하다.

한때는 온갖 귀여움을 받으며 주인 앞에서 재롱을 떨었을 터이지만 이제 남은 것은 하루하루 줄어가는 목숨뿐…. 녀석들은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만 나타나면 반가워서 꼬리를 쳤다.

‘놈’도 그 중의 하나였다.

○ 사귈래?….

‘놈’은 태어난 지 몇 개월 안 된 꼬리가 긴 하얀색 잡종견이다. 버려졌는지, 도망쳤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아는 것은 며칠 전 구조돼 들어왔고, 홍역을 앓고 있으며 안아주면 눈을 꼭 감는다는 것뿐이다.

‘놈’은 내가 개장을 닦을 때 다가왔다. 가로 50여cm, 세로 40여cm의 철장.

병 든 개들이 한두 마리씩 격리돼 대기하는 공간이다. 30여개의 개장을 일일이 소독약으로 닦아주고 오물을 치우는 중에 누가 내 등을 ‘툭’치고 달아났다.

먹이라도 주려고 다가갔더니 저 만큼 또 달아난다. 그러다 귀찮아서 돌아서자 ‘놈’은 다시 다가와 맴을 돌았다.

‘자식∼튕기기는….’

몇 번을 그러다가 결국 우리는 친구가 됐다. ‘놈’은 사람이 그리운지 팔을 내밀면 앞발로 꼭 끌어안는다.

현재 이곳에는 대략 300마리의 개들이 있다. 매일 저녁이면 서울시내 각지에서 잡혀온 ‘버려진’ 개들이 10여 마리 이상씩 들어온다.

올 10월까지 3400여 마리의 개들이 이 곳을 거쳐 갔다. 그러나 입양이나 주인을 찾는 비율은 10%여를 조금 넘을 뿐이다.

대부분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들. 말티즈, 푸들, 시추 등 종류도 가지가지다.

한참 먹이로 줄 개 초콜릿 포장을 뜯고 있는데 ‘놈’이 일을 못하게 한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내 무릎 위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픈 와중에도 사람만 보면 꼬리를 치는 강아지들. 몸보다 더 아픈 것이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종승기자

○ 누가 ‘개’냐?

‘나도 네가 좋아….’

이곳에 있는 개들은 대부분 버려진 개들이다.

병이 들어 돈이 많이 들거나 치료 가능성이 없을 경우, 또 늙게 되면 ‘버려’진단다.

게 중에는 아주 멀쩡한 놈들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게 주인이 싫증났기 때문.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드는 치료가 부담스럽다면 안락사(kg당 약 8000원의 비용이 든다)라도 시키면 될 것을….

그렇게 잔인한 짓은 차마 할 수 없다나?

어떤 이는 동물병원에 버리기도 한단다. 차마 길에 버릴 수는 없고 병원에 버리면 치료라도 해 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동물병원이라고 모두 거둬줄 수는 없다.

예전에는 입양을 한다며 데려간 개를 보신탕집에 팔거나 번식시켜 팔아먹은 사람이 잡힌 적도 있었다.

도대체 누가 ‘개’냐?

잡혀온 개들은 입양되거나 주인을 찾지 않는 이상 30일이 지나면 안락사를 시킨다. 규정이 그러한 데다 수용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홍역이나 옴을 앓을 경우 전염의 우려 때문에 기간이 지나지 않아도 죽인다.

이날 하루에만 10여 마리가 세상을 떠났다.

안락사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일단 마취를 한 뒤 안락사 주사를 놓는다.

개들은 마취를 해도 눈을 뜨고 있다는 수의사의 말.

그래서 마취 상태인 개의 눈에 ‘훅’하고 바람을 불면 눈을 껌벅거린다.

생후 3개월여 만에 안락사를 당한 푸들의 눈을 볼 수 가 없어 방을 나오려했더니 한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이게 현실이에요.”

○ 쓰레기통 속에서도 장미는 핀다.

개들은 사람이 그리운지, 다가가기만 하면 난리를 쳤다. 수십 마리가 몰려와 손을 핥고, 안기고, 냄새를 맡는다.

상처로 두 눈이 썩어 앞을 못 보는 한 시추는 발자국 소리와 냄새로 나를 찾으려고 온 우리를 헤집고 다녔다.

덩치 큰 놈들은 힘으로 밀치며 내 앞자리를 차지했다. 저만치 밀려난 한 새끼 말티즈는 연방 고개를 돌리며 슬픈 눈빛만 지을 뿐이다.

사고로 앞 다리 하나가 없는 진돗개 한 마리는 온 몸의 체중을 이기느라 나머지 성한 앞 다리가 활처럼 휘어졌다.

이날 안락사를 당한 한 푸들은 올 때부터 다리에 주사 바늘을 꽂고 있었다.

수의사는 “이런 개들은 대개 치료비가 많이 들어 버려진 것”이라며 “집에서만 길러진 탓에 집도 못 찾고 방황하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 혼잡한 우리 안에서도 잠깐의 틈을 이용해 ‘딴 짓’을 하는 놈들이 있다. 다른 개들의 정신이 온통 내게로 쏠린 틈을 타 뒤에서 ‘껄떡’대던 놈.

한참 에로영화를 찍던 놈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운지 슬며시 내려왔다.

거참 쑥스럽구먼….

생후 며칠만에 버려진 주먹만한 새끼들은 연신 잠만 자고 있다. 날이 추운지 아무 개한테나 다가가 품으로 파고 든다. 엉겁결에 남의 새끼를 품게 된 개들도 못내 안쓰러운지 물리치지는 않는다.

○ 천국은…사람이 없는 곳

이 협회의 동물병원 내에는 40여 마리의 개들이 있다. 물론 병세가 가벼운 개들은 우리에서 다른 개들과 함께 지내는 경우도 많다.

재정과 인력이 넉넉하다면 충분히 치료해주련만 도저히 감당해 낼 수가 없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별 것 아닌 병으로도 쉽게 안락사를 당한다.

해질 무렵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놈’이 계속 따라왔다. 그새 정이 든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입양이라도 하는 줄 알았던 걸까?

애써 시선을 피하는데 그만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가야…만 하니?’

‘미안해….’

‘또…올 거야?’

‘….’

‘놈’의 홍역 증상은 시간이 지나면 더 심해질 것이다. 그를 기다리는 운명은 뻔한 것이고….

다시 돌아봤을 때 ‘놈’은 어느새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놀고 있었다.

뛰고, 할퀴고, 뒹굴고, 물고….

며칠 뒤.

의례적인 통화 도중 ‘놈’도 멀리 친구들 곁으로 갔다는 것을 알았다.

sys1201@donga.com

▼개 입양하려면…▼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해야만 입양을 할 수 있다.

입양 자체는 무료이지만 데려가기 전에 반드시 불임 수술을 받아야한다. 발정으로 인한 가출과 무분별한 번식을 막기 위해서다. 비용은 개마다 차이는 있지만 10만∼20만원.

병이 있다고 꺼릴 필요는 없다. 다 나은 뒤에 데려가려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데려가서 치료하는 것이 낫다. 목욕을 자주 시켜주고 조금만 치료해주면 나을 수 있는 개들도 많다.

집에 데려간 후에는 반드시 목걸이 등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기입해 사고를 예방한다.

협회측은 “어떠한 사정이 생기더라도 생명이 다할 때까지 돌보겠다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며 “순간적인 동점심이나 필요에 의해 입양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문의 031-868-2851.karam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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