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한지붕 새 가족 'I ♥ Dog'…'애완'에서 '반려'로

  • 입력 2003년 12월 4일 16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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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한재영(33) 김현숙(28) 부부, 올드 잉글리시 십독(14개월). 촬영협조=준 스튜디오)

(모델=한재영(33) 김현숙(28) 부부, 올드 잉글리시 십독(14개월). 촬영협조=준 스튜디오)

"사랑하는 하니야. 언제쯤이면 울지 않고 너를 떠올릴 수 있을까. …아빠 담배 끊은 거 알지? 너 보낼 때 아빠가 약속했다면서.”(1월 26일 오전 3시52분)

“하늘나라에서 엄마 없이 추석을 보냈겠구나.…엄마에게 인생의 정성과 진실을 일깨워 준 나의 아가야. 하늘나라에서도 별처럼 빛날 우리 막내딸….”(9월 12일 오전 6시59분)

“하니야. 12월은 쓸쓸해. 너를 보낸 달이어서. 가슴을 눈물로 채우고 1년을 보냈단다….”(12월 1일 오전 8시15분)

막내딸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가 1년간 인터넷에 올린 추모의 편지 일부다. 엄마가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막내딸’은 12년간 함께 살다 지난해 말 숨진 애견 하니. 이아미씨(47·경기 성남시 분당구)는 1일 기자와 통화를 하면서도 하니 이야기가 나오자 울먹였다. 그는 애견을 화장한 뒤 “우리가 화장하면 같이 들어가려고” 유골을 보관하고 있다.

세상을 먼저 뜬 애견에게 추모 편지를 쓰는 인터넷 사이트 ‘아롱이천국’의 게시판에는 “너를 호적에 올려주지 못하고 보내서 미안하다”는 또 다른 애견가의 고백도 올라 있다.

이들에게 개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며, 대체 불가능한 가족의 구성원이다. 한국 애견연맹에 따르면 개를 키우는 집은 전국 250만 가구로 추산된다. 이들은 왜 사람 이상으로 개를 사랑하는가. 애견은 이들에게 무엇인가.

○ “강쥐야, 너 없인 못살아!”

프리랜서 번역가 김은영씨(32·여)는 아예 ‘아가’라고 이름을 붙인 애견과 7년째 함께 산다. 그는 아가 때문에 해외출장도 3일을 넘기지 않으며 여름에 삼계탕을 할 때도 아가용으로 따로 한 마리를 조리한다. 아가에게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그는 “아가는 가족이나 자식 이상”이라고 말한다. “자식이면 언젠가 혼자 살아갈 수 있겠지만 아가는 나 아니면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부산에 사는 남옥경씨(26·여)가 이달부터 애견일기장 ‘아이 러브 마이 독’에 개 기르는 소감과 사진을 꼼꼼하게 정리하며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여덟살 난 애견 실버가 살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에서다. 그는 “실버가 죽으면 다른 강쥐(강아지)는 못 키울 것 같다. 누구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강아지 3마리를 키우는 김형석씨(43)는 다음달 중순경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애견인 전용 아파트 ‘멍스 맘’에 입주한다. 애견이 없는 사람은 입주할 수 없는 ‘멍스 맘’은 개가 긁어도 별 문제없는 소재로 인테리어를 마감하고 애견 도우미 시스템, 강아지 집, 애견 놀이터 등을 갖췄다. 그는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다 보니 분쟁도 잦았고 이사도 서너 번 다녔다”면서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 이웃끼리 서로 이해하지 않을까” 하고 말했다.

애견 전용 생수, 녹용영양제, 향수, 레인코트 등 사람의 생필품보다 비싼 애견 전용 용품들이 등장한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유럽연합(EU)은 내년부터 애견에게 여권을 발급하고 미국 뉴욕의 헬스클럽에서는 개와 함께 하는 요가인 ‘도가’클래스도 열린다. 이미 사람의 ‘아래’가 아니라 ‘옆’에 개가 자리 잡는 시대가 되었다. (모델=한재영(33) 김현숙(28) 부부, 올드 잉글리시 십독(14개월). 촬영협조=준 스튜디오)

○ “엄마, 나 강쥐 맞아?”

개에 대한 과보호는 때로 ‘개다움’을 잃어버리는 개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대학생 김윤아씨(23·여)가 키우는 미니 핀 암컷은 바닥에 담요나 망석을 깔아주지 않으면 절대로 앉지 않는다. 대학생 강은구씨(23·여)는 “개를 늘 안고 살다시피 하다보니 걷는 걸 싫어해서 산책을 조금 하다가도 안아달라고 다리를 문다. 또 밥을 혼자 먹지 않고 먹여줄 때까지 굶어서 고민”이라고 한다. 공익근무요원 최민석씨 (24)의 닥스훈트는 애견 카페에 가도 다른 개들과 어울리질 못하고 소파 옆에 앉아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베토벤 애견훈련학교 임미라 훈련사는 “요즘은 용변 가리기 뿐 아니라 함부로 물고 짖는 ‘버릇’ 때문에 훈련을 의뢰하는 경우가 늘었다”면서 “마음이 아프다면서 개를 엄하게 훈련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한다.

윤신근 동물병원장도 “요즘 심하게 짖거나 물고 응석이 지나친 개들이 늘었다”면서 “주인의 관심이 지나친 개는 혼자 있을 때 분리불안 증세를 보인다. 반대로 종일 끌어안고 만지면 개가 스트레스를 받아 심리치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도그 쇼를 보러온 김은정씨(26)가 애견 헤라(미니어처 슈나우저)를 아기처럼 품에 안고 있다.이종승기자

○ 개와 통하는 사람들

애완동물 중에서도 유독 개가 사랑받는 이유는 개와 사람 사이의 독특한 교감 때문이다. 지난해 말 미국 하버드대 인류학과 브라이언 해어 교수 연구팀은 사람이 기른 늑대와 갓 태어난 강아지를 대상으로 음식물을 숨겨놓고 눈짓 손짓 등으로 힌트를 주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사람과 거의 접촉하지 않은 강아지가 사람이 기른 늑대보다 사람의 말을 더 잘 알아들었다. 가축화의 긴 여정을 통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이 개의 유전자에 남게 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푸들을 키우는 회사원 김태영씨(26)도 개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확신한다. 그는 “개가 ‘산’이라는 단어를 알아듣고 그 말만 들리면 미친 듯 현관문 앞을 뛰어다닌다. 식구들끼리 등산갈 때는 ‘마운틴’ 등의 암호를 써야 할 정도”라고 전했다.

이아미씨는 “하니를 키울 때 개가 말을 못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면서 “내가 기분이 나쁘거나 슬플 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니는 알아차렸고, 나를 보며 구슬프게 짖곤 했다”고 추억한다.

다 자란 개가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는 경우가 흔한데 이는 오직 사람을 대할 때만 내는 소리다. 하지홍 경북대 유전공학과 교수는 “오랜 기간 가축화되면서 강아지처럼 낑낑거릴 때 보상이 있거나 사랑받는다는 것을 개가 알게 됐기 때문”이라며 “현재의 개는 인간이 그들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동물”이라고 진단했다.

애견은 이제 어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민석화씨(25)가 6개월 된 아들 기혁군과 함께 퀸(푸들)을 만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이종승기자

○ 왜 개인가

애완동물과 사람의 관계 형성 패턴을 연구한 미국 유타대 비즈니스 스쿨의 러셀 벨크 교수는 “애견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반영한다”고 진단했다.

양육을 통해 질서가 잡히고 의인화된 애견들은 “문명화되어있고 길들여져 있고 잘 행동하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동물적이고 무질서하고 혼돈스러운” 사람들의 분열된 자아를 반영한다는 것. “사람들이 자신의 동물성의 일부인 섹스가 지나치게 깔끔하고 예측 가능하기를 바라지 않듯, 애견에 가치를 두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애견이 인생을 자극적이고 예측불가능하고 흥미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더군다나 개는 풍부한 안면 근육을 사용해 사람과 유사한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 보이면서도 절대 평가를 하지 않는다. 사람과의 관계는 기쁨의 근원인 동시에 고통의 근원일 수 있지만 주인에 대한 애견의 애정은 믿을 수 있고 무조건적이다. 정신과 전문의 정찬호씨는 애견에 대한 집착을 “애착의 대상을 점점 잃어가는 현대의 가족 해체에 동반되는 현상”이라고 바라봤다.

그러나 애견에 대한 집착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애견샵인 퍼피젠 강남구청점 홍윤진 대표는 “액세서리처럼 개를 키우다가 점점 뒤치다꺼리 할 일이 많아지면 쉽게 버리거나 바꿔서 키우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고 전했다. 온라인 쇼핑몰에는 물건을 사거나 퀴즈를 맞히면 개를 경품으로 준다는 광고도 넘쳐 난다. 애견과 ‘반려’로 더불어 살기까지 사람이 갈 길은 아직 멀었다.

글=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이런 집엔 이런 개를…▼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다가오면 선물로 개를 사려는 사람들로 애견 숍이 붐비기 마련. 그러나 개를 선물로 주고받는 것은 적절치 않을 뿐더러 ‘내가 제공할 수 있는 환경’과 ‘개가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이 궁합이 맞지 않으면 애견과의 공존관계는 오래 가기 힘들다.

애견을 선택할 때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키우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 애견을 반려동물로 생각한다면 가족의 생활패턴과 적합한 활동성향을 지니고 있는 종을 고르는 것이 좋다. 한국애견협회 최지용 이사의 도움말로 ‘가족 유형에 따른 개와 궁합 맞추기’를 알아봤다.


(왼) 푸들, 시추, 미니어처 슈나우저

▽아이가 있는 집=푸들, 레트리버, 뉴펀들런드, 콜리, 퍼그 등이 알맞다. 여자아이가 있다면 애견미용에 취미를 붙일 수 있는 말티즈도 권할만하다. 다만, 요크셔테리어나 말티즈는 질투심이 많다는 점을 유의할 것. 개와 자주 놀고 싶다면 스트레스에 약한 포메라이언보다 튼튼하고 장난이 심한 퍼그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푸들은 감수성이 풍부해 아이들과 잘 어울린다. 또, 총명해 배변 습관등도 잘 지킨다.

▽낮에 개를 혼자 놔둬야 하는 싱글족 혹은 맞벌이 부부=시추가 무난하다. 아무거나 잘 먹고 면역력이 좋다. 혼자 놔둬도 심한 장난을 치거나 많이 짖지 않는 편. 그러나 다른 견종에 비해 애교는 다소 떨어진다. 개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다면 치와와나 시바견도 적당하다. 간단한 산책정도를 즐기고 싶다면 미니어처 닥스훈트나 래브라도 리트리버, 팸브로크 웰시 코기 등이 무난하다. 보더 콜리나 아이리쉬 세터와 같이 큰 개는 야외에서 활동적인 스포츠를 즐기기에 적합하다. 작지만 장난기 많은 잭 러셀 테리어도 활동량이 많은 종. 다만, 리트리버류의 사냥용개는 윤기 나는 피부에서 냄새가 난다.

▽노인이 있거나 노부부가 사는 집=털 관리가 필요 없는 셔틀랜드 쉽독이나 미니어처 슈나우저, 푸들 등이 좋다.

적당한 산책을 함께 할 수 있으며 온순한 편이어서 이웃과 사귀기도 쉽다. 털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털이 긴 개를 택하는 것이 오히려 청소하기 용이하다. 자주 입는 옷 색깔과 같은 색의 털을 가진 개를 고르는 것도 보다 즐거운 공존을 위한 팁.

한국애견협회 최이사는 “어떤 견종이든 훈련하면 사람과 잘 지낼 수 있지만 정확한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애견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사진제공=마이도기)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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