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제임스 메트레이/부시의 '벼랑끝 전략'

  • 입력 2003년 12월 3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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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한 기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공세적 현실주의’라는 세계전략을 펴 왔다고 지적했다. 공세적 현실주의란 ‘경쟁자를 제거하는 압도적 힘을 축적하고 자신의 이념과 가치, 선호도를 반영하는 세계질서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히 대부분의 한국인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공세적 현실주의’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공세적 현실주의는 그가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라크 이란 북한 등 3개국을 붕괴시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7개월 전 유엔의 승인을 받지 않은 채 기민하게 이라크를 점령함으로써 ‘미국의 뜻’대로 세계질서를 재편할 힘을 갖췄다고 믿게 됐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들은 부시 행정부의 기대를 한낱 ‘불가능한 꿈’으로 바꾸었다. 이라크에서 미군 전사자가 늘고 예산적자가 엄청난 규모로 확대되면서 공세적 현실주의를 적극 추진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한반도의 사태 전개도 진정한 국제 공조를 거부한 데 따른 곤경과 위험을 드러냈다. 8월 북한과 미국 대표는 러시아와 중국 일본 한국 대표들과 함께 만났지만 평양은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를 계속 거부했다.

워싱턴은 현재의 북핵 위기를 끝내지 않으려는 전략에 매달려 있다. 50년 전 6·25전쟁 정전협상 때도 이와 비슷했다. 미국은 당시 호전적이고 비타협적인 태도로 휴전을 지연시켰다. 1951년 7월 10일 협상이 개시됐을 때 평화로 가는 길이 아주 길거나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는 거의 없었다. 만약 미국이 평양과 원산을 잇는 비무장경계선을 긋자는 식의 터무니없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면 휴전협정은 4개월 만에 마무리 지을 수도 있었다. 이후 판문점 협상이 재개되자 조기 휴전을 원한 중국은 전선을 따라 비무장지대를 두는 데 동의했다.

부시 행정부는 지금도 그때와 같은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올해 8월 6자회담 이전 워싱턴은 만약 북한이 국제사찰을 용인한다면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음을 보장하는 문서를 내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은 절대로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은 없을 것이라고 보장하는 어떤 표현도 하지 않았다.

미국은 대신 9월에 북한을 드나드는 선박을 조사하고 금지하기 위한 합동해상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워싱턴이 북한에 대해 거꾸로 ‘벼랑 끝 외교’를 전개하려 한다는 것은 8월 말 베이징 6자회담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다. 미국이 대치국면을 해소할 핵폐기와 불가침조약의 ‘동시 병행 조치’를 거부하자 북한 대표단은 핵보유를 공식 선언하겠다고 맞섰다. 북한은 “그들이 총을 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우리는 당연히 무기를 먼저 내려놓겠다. 이것은 심지어 애들도 하지 않는 장난이다”라고 말했다. 합당한 지적이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교착상태를 군사 경제적 조치까지를 포함한 대북 압박을 정당화하기 위한 카드로 활용했다.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미국의 강경파 외교관인 존 볼턴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의 종말’이라는 책을 서가에서 꺼내 책상에 쾅 내리치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우리의 정책이오”라고.

한국은 부시 행정부의 공세적 현실주의를 거부해 왔다. 9월 한국 정부는 부시 대통령에게 핵 폐기의 대가로 북한에 안전보장과 단계적인 경제제재 해제라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 같은 대북 인센티브를 이라크 추가 파병의 조건으로 삼겠다고 말해 워싱턴을 격분시켰다. 미국은 5000명 파병을 요청했다.

미국이 공세적 현실주의 전략에 계속 집착하는 한 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위기를 종식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벼랑 끝(dead end)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부시 행정부의 목표다.

제임스 메트레이 캘리포니아 치코 칼스테이트대 역사학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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