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송문홍/이종석 NSC 차장에게

  • 입력 2003년 12월 2일 18시 41분


코멘트
오랜만입니다. 지난 주말 이라크에서 발생한 한국인 테러사건으로 무척 바쁠 줄 압니다. 며칠 뒤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에 취임한 이후 첫 미국 출장까지 예정돼 있으니 마음이 더 분주하겠군요.

우리가 처음 알게 된 10년 전 일이 생각납니다.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한 1994년 7월 저는 월간 신동아의 기자였고 이 박사는 주체사상으로 학위 논문을 마친 소장 학자였습니다. ‘빅뉴스’에 경황이 없었던 신동아 편집실은 이 박사가 며칠 만에 써 준 원고지 수백장 분량의 ‘김일성론(論)’으로 한시름 놓을 수 있었지요.

이 박사는 남들이 넘보기 어려운 해박한 지식으로 북한연구 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같은 민족인 북한을 우리가 끌어안아야 한다는 열정 또한 남에게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 박사의 진가는 김대중(DJ) 정부에 들어와 빛을 발하기 시작했지요. DJ가 햇볕정책의 창안자이고 임동원씨가 그 실행자였다면, 이 박사는 햇볕정책의 첫째가는 전도사였습니다. 그만큼 이 박사의 식견과 신념이 남달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봅니다. 그 시절 이 박사가 참석하지 않은 북한 학술회의는 ‘건질 게 별로 없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으니까요.

노무현 정부에 와서 이 박사는 또 한 차례 ‘도약’을 했습니다. 그동안 정부 외곽에서 대북정책을 논평하던 입장에서 이제 이 나라의 외교안보정책 전반을 직접 챙기는 자리로 옮긴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 이 박사와 관련해 나도는 이런저런 말들에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한다는 점을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라크 추가 파병을 놓고 외교안보부처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보도가 가까운 예입니다. 그 와중에 외교안보부처의 견해를 총괄 조정해야 할 NSC는 특정 입장을 밀어붙이고 있고, NSC의 ‘실세’로 알려진 이 박사는 이른바 ‘자주파’의 대표 격으로 묘사되더군요.

이 박사도 동의하겠지만 ‘자주파’니 ‘동맹파’니 하는 분류는 사실 부질없는 짓입니다. 우리의 자주성을 지키는 것과 한미동맹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우리 국가이익을 최대한 얻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주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박사가 자의든 타의든 설익은 자주론자로 비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NSC의 차관급 책임자로서 어느 한쪽의 주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곧 미국을 방문한다고요? 그것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오십시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관료들이 요즘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해서는 또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속속들이 파악하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그들과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맺는 일도 물론 중요합니다.

DJ시절 임동원씨는 탁월한 대북전략가였지만 미국에 대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게 중평입니다. 저는 그것이 DJ정부와 미국 공화당 정부의 관계에 상당한 내적 균열을 가져온 한 가지 요인이었다고 봅니다. 이 박사는 그 같은 우(愚)를 다시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박사 개인의 문제가 아닌 나라의 장래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