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81…귀향 (15)

  • 입력 2003년 12월 2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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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자상한 우리 엄마…나를 늘 어린애처럼 다루면서, 하나에서 열까지 뒷바라지해주었던 엄마…매일 매일 단 과자를 마음껏 먹게 해주었던 엄마…오카모토 과자점의 카스텔라, 말린 바나나, 히구치야의 풀빵, 오징어도 그냥 안 주고 간장과 설탕에 맛있게 볶아 주었고…쇠고기도 숯불에 구워, 아이고 귀여운 내 새끼, 하면서 한입 두입 먹여주었지. 동아여관이나 동아관이나, 작년 8월 15일까지는 총감부 밀양 출장소장과 밀양 경찰서장, 밀양 군수가 단골손님이라 밀양에서 제일 장사가 잘 됐다, 그래서 우리는 전시인데도 쇠고기 요리에 새하얀 쌀밥만 먹었지. 도시락도 다른 아이들은 보리밥에 김치하고 장아찌 반찬뿐인데, 나는 흰쌀밥에 장조림하고 조린 연어였어, 모리타 선생님도 내 옆을 지날 때는 군침을 꿀꺽 삼켰지. 내가 채소를 싫어해서, 김치는 상에 올려놓지도 않았어. 엄마는 설렁탕에 떠 있는 잔 파도 하나 남김없이 젓가락으로 집어내고는, 자 이제 됐으니까네, 어서 먹자 우리 새끼, 하면서 하얀 사발을 내밀었지. 가끔은 요리사가 일본 요리도 만들어 주었어. 장어덮밥에 닭고기 계란덮밥, 새우튀김, 스키야키, 오므라이스…아아, 맛있다…맛있었어 엄마….

다른 아이들은 짚신에 고무신, 집에 좀 여유가 있으면 운동화를 신고 다녔지만 나는 특별히 주문한 가죽 구두를 신고 학교에 다녔어. 한 켤레는 갈색 단화고, 또 한 켤레는 앞끝이 동그란 검정 구두였지.

열여섯 살 때 엄마하고 같이 미장원에 가서 단발머리에 파마를 했어. 엄마는 미장원 언니들에게 ‘영화의 벗’을 보여주면서, 우리 딸아이 머리 다카미네 미에코처럼 해 달라고 했지. 거울에 비친 나는 조금도 다카미네 미에코를 닮지 않았는데, 엄마는 내 얼굴에 아몬드 파파야 크림을 바르고 키스미 볼연지와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는, 아이고, 다카미네 미에코하고 똑같다, 아이고 내 새끼, 이쁘기도 하지, 하면서 머리카락을 쓰다듬고는 볼에다 마구 뽀뽀를 해댔어, 아이고 이뻐라 귀여운 우리 새끼.

머리는 스스로 묶자, 파마는 사치다, 사치는 적이다, 그런 표어가 나돌았던 시절인데, 교장 선생님 역시 우리 단골이라서, 무슨 일이든 너그럽게 눈감아 줬어.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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