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신궁(神弓)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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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봉됐던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무협영화 ‘영웅’은 진시황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활(弓)과 노(弩·석궁)로 무장한 진시황의 군대였다. 열 지어 선 궁수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활을 쏘아대는 장면은 2000년 전의 군대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위력적이다. 보통 활에 비해 훨씬 멀리 날아가 ‘600걸음 밖까지 쏠 수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석궁은 중국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군대편제에 도입했다고 한다.

▷활쏘기로 치면 우리 민족이 중국보다 한 수 위다. 오죽하면 고대 중국인들이 우리를 보고 ‘큰 활을 잘 쏜다’고 감탄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을까. 고구려 시조인 주몽(朱蒙)도 활을 잘 쏜다는 부여(夫餘) 말인 ‘선사자(善射者)’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고대의 활쏘기 풍습은 조선시대까지 면면히 이어졌다. 활쏘기는 왕에서부터 일반 무사, 문관과 양민들에 이르기까지 두루 즐겼고, 각종 시험제도에서 인재 선발의 기준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명사수였던 22대 정조대왕(1752∼1800)은 “내가 요즘 활쏘기에서 (50발을 쏘아) 49발을 맞히고 그치는 것은 모조리 다 명중시키지 않기 위해서이다”라는 말까지 남겼으니 신궁(神弓)이 따로 없었던 셈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최근 개발에 성공한 휴대용 대공미사일 이름이 ‘신궁(新弓)’이다. 몇 차례 실시한 시험사격에서 90% 이상의 명중률을 기록했다니 이름값을 제대로 할 모양이다. 지형 특성상 종심(縱深·전방에서 후방에 이르는 거리)이 짧은 우리나라는 적기의 갑작스러운 내습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휴대용 미사일의 효용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말이다. 그동안 실전 배치됐던 프랑스제 미스트랄은 신궁보다 무겁고, 미제 스팅어는 명중률이 떨어진다. 내년부터 이런 외국산 무기들을 대체할 우리의 ‘첨단 화살’이 선조들의 신궁 전통을 잇는 것 같아 마음 든든하다.

▷ADD는 70년대에 자주국방을 추구했던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세운 우리나라 무기개발의 총본산이다. 지대지미사일 ‘백곰’과 ‘현무’, K1A1 전차, 한국형 장갑차 K200,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인 ‘천마’ 등이 ADD의 작품들이다. 한때 “ADD에 납품되는 볼펜 수도 보안”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비밀이 많은 기관이기도 하다. 비밀이 많으면 어떤가. 가끔 신궁 같은 새 무기 개발로 국민을 즐겁게만 해 준다면. ADD 연구실의 불이 밤낮없이 꺼지지 않을 때 자주국방의 꿈도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을 게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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