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알렉산드라 맥기/맛없지만 드셔보세요?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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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한 한국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지난 몇 년간 내 가슴을 짓누르던 한 선물사건의 진실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그 사건은 5년 전 내가 한국의 한 여자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한 동료 여교사가 막 출근한 내게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담긴 김치를 안기면서 영어로 말을 건넸다.

“맛없는 거라 우리 가족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드실 만할 거예요.”

나는 ‘진짜 영국인’으로서 체면을 잃지 않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정말 고마워요. 참 친절하시네요”라고 깍듯이 답례는 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왜 자기 가족도 못 먹을 것을 남에게 주지 못해 안달이란 말인가. 하루종일 씩씩대며 고민했지만 그 ‘끔찍한’ 선물의 의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퇴근 시간, 나는 원수 같은 김치통을 들고 교무실을 나섰다. 나로서는 그녀가 이미 맛없다고 단정한 그 김치를 먹을 생각이 물론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한 식당 주차장 앞에 그 김치통을 버려두고 집까지 전력질주를 했다.

그날 밤 눈이 소복이 내렸다. 다음날 출근길에 눈에 푹 파묻힌 그 김치통의 윤곽을 보면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원치 않던 선물을 속 시원히 처치한 나 자신이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한달여가 지나 새 학기가 왔고 교사들이 점심 회식을 하기로 했다. 장소가 하필이면 문제의 그 식당이라는 것 아닌가. 기겁한 나는 차를 태워 주겠다는 다른 교사들의 제의를 극구 사양하고 그 식당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그때까지 눈 속에 반쯤 파묻힌 채 방치돼 있던 그 김치통을 꺼내 주차장의 다른 차 밑에 감추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그리고 일을 확실히 마무리하기 위해 나는 며칠 뒤 그 김치통과 똑같은 것을 사서 내게 선물을 준 그 여교사에게 돌려줬다. 이번에도 미소와 함께 “고마워요, 너무 맛있었어요”라는 말을 잊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몇 주 전 내 수업을 듣는 한 여학생이 그녀가 손수 만들었다는 케이크를 선물하며 “별로 맛은 없지만 드세요”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5년 전 악몽을 상기한 나는 이번에는 “왜 나더러 그걸 먹으라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 여학생은 깜짝 놀라서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그럼 왜 맛없는 것을 주느냐”고 따졌다. 그리고 비로소 선물할 때 그것을 평가 절하해 말하는 한국적 관습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영어권 국가에서도 선물을 할 때 “당신을 위해 작은 것을 준비했다”는 말을 건넨다. 하지만 그것은 비싼 것이 아니라는 의미지 질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뒤늦게 나는 내가 어쩌면 엄청나게 맛있었을지 모를 김치를 아깝게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는 한국인들이 선물할 때 하는 말을 믿지 않으리라.

▼약력 ▼

1968년 호주 남부 애들레이드에서 태어났으며 영국에서 성장해 얼스터대에서 프랑스어 및 유럽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았고 스위스, 프랑스 등지에서 살았다. 1997년 한국을 첫 방문해 1년여 체류했고, 2002년부터 지금까지 주한영국문화원 영어강사로 재직 중이다.

알렉산드라 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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