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56…잃어버린 계절(12)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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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을 타고 양쯔강을 내려가 상하이에 도착한 것까지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데, 상하이에서 다롄까지는 며칠이나 걸렸는지 그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일본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화물열차를 탔을 때, 꿰이즈(놈)! 꿰이즈!라면서 중국 사람들이 등에 돌을 던져 지금도 욱신욱신 아프다. 어느 역에서 어느 역으로 가는 중이었을까, 선로가 끊어져 열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은 미군 지프도 얻어 타고, 농부의 수레도 얻어 타고, 대소변은 숨어서 대충 보는데 닦을 종이는 없고, 생리 때도 그냥 피를 줄줄 흘렸다. 해가 지면 사람들 눈에 안 띄는 장소를 찾아, 여자인 줄 모르게 모포나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잠을 잤다. 그렇게 아무튼 다롄으로 돌아왔다. 2년 전 사냥모자 쓴 남자에게 속아 대륙호와 비둘기호를 갈아타면서 왔던 다롄…도로 위로 빗물이 튀어 가로등이 연기 같은 빛을 뿌렸었다…참 예뻤는데…그리고 처음 본 바다! 한없이 꿈틀거리는 파도, 파도, 파도…나, 너무 신이 나서 고무신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부두를 달렸지, 강아지처럼…그 날 바다가 얼마나 반짝거렸는지, 나의 출분을 축복하는 것처럼 반짝반짝….

눈을 뜨자 누군가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있었다. 이마에 돋은 흰머리를 모나게 손질하고, 거뭇거뭇 빛나는 누비 조끼에 바지를 입은 늙은 여자였다.

“요치얼마카이스 쿼런바(살아 있느냐)?”

“…훠런(살아 있어요).”

“르번런(일본 사람인가)?”

“자오셴런(조선사람입니다).”

“전쟁은 벌써 끝났어. 일본 사람들은 당신네 나라를 떠났으니 안심하고 돌아가.”

늙은 여자는 숯 검댕과 때로 새까만 나미코의 볼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창백한 주름투성이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띠고는, 두 팔을 살짝 벌리고 허리를 타조처럼 실룩거리면서 어정어정 어디론가 걸어갔다.

나미코는 보자기로 얼굴을 가리고 누웠다. 잠시 후 누군가가 보자기를 걷어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와 호리병을 건넸다.

“라이, 워라이까이(이리 줘 봐, 내가 열게).” 늙은 여자는 호리병의 뚜껑을 열어 다시 나미코의 손에 쥐어주었다.

“허바(어서 마셔).”

나미코는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마시고, 만두를 우적우적 삼키며 울음을 터뜨렸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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