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열대어'…산업사회의 일본 젊은이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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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어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춘미 옮김

245쪽 7500원 문학동네

다이스케는 건축 현장의 일꾼. 술집 마담 출신의 마미와 그녀의 어린 딸을 데리고 산다. 무작정 찾아온 이복동생 미쓰오를 그는 군소리 없이 한 집에 살게 한다. 그는 ‘누구에게나 다정한 놈’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건축주의 어린 딸을 불러내 건드렸다가 죽도록 맞아 부은 다이스케의 얼굴을 보고 마미는 딸이 놀랄까봐 염려할 뿐 별 불평이 없다. 다이스케 자신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면 죄책감을 가질 일이 없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인간 군상은 ‘타인에 대한 배려’에 무척 신경 쓰는 현대 일본인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러나 2002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 작가에게 이런 주인공들의 모습은 어딘가 ‘의지박약’의 모습을 띠고 있다.

건축가가 되고 싶었지만 공부가 하기 싫어 도전도 못 해 보고 포기한 다이스케도 그렇지만, 뭐 하나 딱 부러지게 해내는 일 없이 종일 열대어만 들여다보고 있는 동생 미쓰오는 더욱 의지박약이다. 종내는 물고기의 얼굴을 하나하나 구별할 정도가 되고 만다. 그는 “다 같아 보이지만, 한 마리 한 마리가 모두 달라”라고 말한다.

집주인 도키 선생은 건축 현장에서 찍은 인부들의 사진을 보며 ‘열대어 같지?’라고 말한다. 다이스케는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낸다.

작가는 ‘열대어’에 어떤 상징을 부여하고 싶었을까. 자신의 의지만으로 움직일 공간이 거의 없어진 고도 산업사회 속에서 마냥 친절하기만 한, 주위에 피해 끼치지 않고 얌전히 자신의 영역에 틀어박힌 의지박약의 젊은이들. 그들을 통해 ‘다 같아 보이는’ 물고기 군상의 모습을 본 것은 아닐까.

함께 수록된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돌풍’의 주인공 닛타는 바닷가 민박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민박집 여주인을 유혹해 차로 도쿄에 데려오지만, 아무 일 없이 지하철역에 얌전히 내려놓는다. 특별한 동기도, 의지도 없다.

‘욕망에는 에피스테메, 즉 지(知)의 총체가 있지만 쾌락에는 왜 없는 것일까.’

표제작 ‘열대어’에서 저자는 도키 선생의 강의록 일부를 독자에게 내보인다. 욕망은 포기한 채 지(知)가 빠진 쾌락만을 좇는 ‘부품 인간’들의 잔영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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