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칭기스칸기'…'칭기스칸 전기' 르포처럼 읽는다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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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서 말을 타고 있는 몽골인들. 칭기스칸은 뛰어난 기마술을 가진 병사를 이끌고 40대 중반의 나이에 중국 중앙아시아 중동 소아시아 러시아 등을 정복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초원에서 말을 타고 있는 몽골인들. 칭기스칸은 뛰어난 기마술을 가진 병사를 이끌고 40대 중반의 나이에 중국 중앙아시아 중동 소아시아 러시아 등을 정복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칭기스칸기/라시드 앗 딘 지음 김호동 옮김/506쪽 3만2000원 사계절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내가 살던 땅에서는 시든 나무마다 비린내만 났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탓하지 말라. 내가 세계를 정복하는 데 동원한 병사는 적들의 100분의 1이나 200분의 1에 불과했다. 나는 배운 게 없어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그런 내 귀는 나를 현명하게 가르쳤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있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칭기스칸이 됐다.”

한때 인터넷을 통해 유행했던 칭기스칸의 가상 편지다. 13세에 아버지를 잃고 친족과 사촌들에게 핍박을 받던 칭기스칸은 불굴의 의지로 고난을 이겨내고 세계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의 이름은 ‘왕 중의 왕’ ‘막강하고 위대한 군주’를 의미한다.

칭기스칸을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책이 번역 출간됐다. 몽골 제국(帝國) 중 지금의 이란 일대를 지배했던 일칸 왕국의 재상 라시드 앗 딘(?∼1319·Rashid ad-Din)이 저술한 ‘집사(集史)’의 2부 ‘칭기스칸기’. 라시드 앗 딘의 ‘집사’는 역사의 지평을 세계로 넓힌 ‘최초의 세계사’로 평가될 만큼 중국부터 서아시아 이집트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역자인 김호동 교수는 지난해 ‘집사’의 1부 ‘부족지’에 이어 이번에 2부 ‘칭기스칸기’를 번역해냈다. 김 교수는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준 데 힘입어 마지막 3부인 ‘칭기스칸의 후예들’도 가급적 빨리 출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칭기스칸기’는 칭기스칸 조상의 계보와 역사를 다룬 ‘열조기’, 칭기스칸의 일생을 다룬 ‘칭기스칸 일대기’, 칭기스칸이 남긴 유훈과 군대 숫자 등을 언급한 ‘천호일람’ 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이 책은 라시드 앗 딘의 말처럼 칭기스칸의 연대기를 서술하면서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주변 다른 군주의 역사도 다뤄 몽골제국 건설의 전 과정을 포괄적으로 서술했다. 또 이슬람 역사서술의 전통대로 호오(好惡)를 가리지 않고 있었던 일을 그대로 담담하게 서술해 사실성이 높다.

김 교수는 번역 과정에서 최상으로 인정받는 이스탄불 톱카프 도서관의 사본(寫本)을 기초로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사본 등 6종의 사본을 대조 검토했다. 신페르시아어로 쓰인 ‘집사’의 번역은 영어 러시아어에 이어 한국어가 세 번째. 번역이 힘들어 일본에서도 아직 부분 번역밖에 없을 정도다. 역자의 노력 덕분에 ‘집사’를 한글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다.

칭기스칸의 일생을 기록한 자료로는 몽골인들이 체험과 회고담을 옮긴 ‘몽골비사’와 그 내용을 옮긴 ‘원사(元史) 태조본기’ 등이 있지만 ‘칭기스칸기’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 몽골 왕실의 비기(秘記)인 금책(金冊)을 사료로 활용한 것이 장점. 물론 일반 독자라면 깔끔하게 정리된 칭기스칸의 전기를 읽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칭기스칸기’는 사후 보고서가 아니라 “침을 뱉었다” “말싸움을 했다” 등 생생한 현장 르포기사를 읽는 것처럼 색다른 맛을 준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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