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고갱이 타히티에 간 까닭은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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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타히티, 열대의 아틀리에

클레르 프레쉬 토리, 조르주 샤켈포르 외 지음

프랑스 국립박물관협회 2003

10월 2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의 언저리에 위치한 그랑 팔레에서는 후기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1848∼1903)의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고갱-타히티, 열대의 아틀리에·Gauguin-Tahiti, l'atelier des tropiques)가 개막됐다. 일주일 뒤인 10월 9일은 프랑스인들이 20세기 최고의 샹송으로 여긴다는 ‘날 떠나지 마오(Ne me quitte pas)’의 작사 작곡가이자 가수인 자크 브렐(1929∼1978)의 25주기 날이었다.

두 예술가는 시대를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남태평양의 작은 섬 ‘마르키즈’에서 함께 ‘사후(死後)의 연(緣)’을 맺고 있다. 문명사회의 번잡스러움을 훌훌 떨쳐버리고 남방의 작은 섬에서 말년을 보내며 병마 속에서도 창작의 열정을 잃지 않았던 화가와 음유시인이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묻혀 지금도 서로 마주하고 있으니 말이다.

때 이른 추위 속에서 옷깃을 여미며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서일까.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원색의 강렬한 색채와 굵직굵직한 평면들로 채워진 고갱의 남방 그림들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 같았다.

전 세계 미술관에 흩어져 있던 190여편의 고갱 작품들이 이번 전시회를 위해 모아졌다고 한다.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의 나무, 돌 조각에서 풍겨 나오는 타히티의 ‘노아노아’(원주민어로 ‘향내’라는 뜻), 화가를 타히티로 이끌었던 앙리 르마송의 사진들, 남방 낙원에서 뒹구는 폴리네시아 여인들의 나신(裸身), 브렐의 노랫말에서처럼 흥얼거리며 한가롭게 노니는 늙은 백마들…. 이번 전시회의 대미는 50년 만에 소장지인 보스턴미술관을 떠나 파리를 찾아왔다는 고갱의 거대한 인간 프레스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는가?’가 장식하고 있었다.

전시회의 카탈로그인 ‘고갱-타히티, 열대의 아틀리에’는 바로 이 그림으로 겉표지를 꾸몄다. 책에 글을 실은 18명의 전문가들은 ‘화가이자 민속학자인 고갱’에 초점을 맞추며 1891년부터 시작된 고갱의 타히티, 마르키즈 섬에서의 체류가 어떻게 화가의 ‘예술적 창조성’에 투영되는가를 시기별로, 작품별로 살펴보고 있다. 이 외에도 ‘고갱, 상상의 원시성’(Gauguin, le sauvage imaginaire·셴 출판사·2003), ‘노아노아, 폴 고갱의 타히티 여행’(Noa Noa, Paul Gauguin-Voyage `a Tahiti·아술린출판사·1995), ‘타히티의 몽상가’(Le Rveur de Tahiti·파이야르 출판사·2003), 고갱과 브렐의 발자취를 뒤쫓는 ‘마르키즈로 가는 길’(La route des Marquises·올리잔 출판사·1995) 등이 눈에 띈다. 이들은 브렐의 노래 ‘마르키즈’가 은은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전시장 서점에서 골라본, ‘타히티, 마르키즈의 고갱’을 주제로 한 책들이다.

임 준 서 프랑스 루앙대 객원교수 joonseo@worldonlin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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