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 ‘超人박정희’ 바로보기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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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의 필자들은 박정희 시대의 성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사회의 정치경제적 틀을 만들었다는 점을 평가한다. 1975년 10월 영동고속도로 개통식에 박근혜씨와 함께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동아일보 자료사진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의 필자들은 박정희 시대의 성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사회의 정치경제적 틀을 만들었다는 점을 평가한다. 1975년 10월 영동고속도로 개통식에 박근혜씨와 함께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동아일보 자료사진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이병천 엮음/448쪽 1만5000원 창비

인간에게 향수는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의 발로이며 암울한 현실을 위무해 주는 피난처이기도 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한 기간만큼의 시간이 흘러간 시점에서 그에 대한 향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는 한국사회 특유의 사자(死者)에 대한 온정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화시대에 독재자에 대한 향수는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박정희에 대한 ‘신격화 담론’을 철저히 경계하고 있다. 신격화 담론은 박정희를 경제건설의 신화적 존재로 끌어올림으로써 부정적 측면을 ‘만족희생’쯤으로 상대화시킨 ‘정당화 담론’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신격화 담론은 ‘역사적’ 박정희가 아닌 ‘초인(超人)으로 미화된’ 박정희를 통해 지도자와 대중의 일체화를 꾀하는 파시스트적 담론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파시스트적 담론은 대중을 독재 권력에 영합한 공범으로 치부함으로써 반민주적 반시민사회적 성격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박정희 바로보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병천 교수(강원대·경제학)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적 성취를 애써 외면하는 ‘근본주의적 초비판’과 냉전체제하의 국가주의적 근대화의 위험성을 망각한 ‘무반성적 승리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에 냉소를 보내는 박정희 ‘우상화 담론’을 박정희 바로보기의 최대 장애물로 인식한다. 그의 의도는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빛과 그늘, 기적과 위험, 성과와 파행을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적 측면에서 반성함으로써 탈냉전 민주화시대의 역사성을 정립하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 개념에 비춰볼 때 박정희 모델은 양적인 성장에는 성공했지만 경제발전으로 귀결되지 못했으며, 개발독재로 인해 노동자에 대한 경제성과의 분배율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박정희 신드롬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한 분석이 결여됐다는 것이다. 박정희 신드롬은 분명 작위적인 일부 세론(世論)에 의해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 그러나 박정희 신드롬의 저변에는 현실에 대한 ‘울분’이 깔려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개발독재 시대의 관치경제 패러다임을 대체할 패러다임이 구축되지 않은 채 민간부문의 활력이 저하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다.

또한 이 교수의 주장대로 경제발전의 관건은 경제자유의 신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관치경제의 청산을 외치면서도 시장규율에 대한 노파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노동 배제적인 성장이 이루어진 개발의 시대를 보낸 이상, 분배는 ‘시장의 몫’이라는 정책인식을 가져야 한다. 약자는 보호돼야 하지만 노동자가 약자라는 인식은 예단(豫斷)에 가깝다. 그리고 민주화와 경제성장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

로버트 배로 교수(미국 하버드대·경제학)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간의 상관관계가 높지 않음을 밝힌 바 있다. 법치가 확립되고 재산권이 존중되며 경제참여의 의욕이 훼손되지 않을 때 그리고 정부의 재량적 시장개입이 자제될 때, 시장 참가자 모두 승자가 될 수 있다. 결국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굳건한 믿음만이 박정희 신드롬을 해체시킬 수 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dkcho@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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