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풍경과 마음'…동양화는 현실과 이상향이 하나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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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성의 ‘산’(1994). 동양의 산수화에서는 원근법이 별 의미가 없다. 김우창 교수는 ‘멀리 있는 것은 사람의 눈에 2차원적으로 보인다’는 E H 곰브리치의 견해를 인용해 “원근법 없이 원경을 묘사하는 산수화 역시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사진제공 생각의나무
장우성의 ‘산’(1994). 동양의 산수화에서는 원근법이 별 의미가 없다. 김우창 교수는 ‘멀리 있는 것은 사람의 눈에 2차원적으로 보인다’는 E H 곰브리치의 견해를 인용해 “원근법 없이 원경을 묘사하는 산수화 역시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사진제공 생각의나무
◇풍경과 마음/김우창 지음/172쪽 2만원 생각의나무

인문학자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67)가 동양화를 소재로 에세이집을 냈다. 부제는 ‘동양의 그림과 이상향에 대한 명상’.

김 교수는 동양화와 서양화를 비교하며 치밀한 분석적 언어를 통해 동양문화의 심층에 있는 사유방식과 이를 통해 당대인이 꿈꿨던 이상향에 다가갔다. 책을 읽다가 궁금한 게 있어 10월 30일 오후 저자의 서울 평창동 자택을 찾았다.

―그림을 통해 ‘동양’에 접근하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어렸을 때 그림을 좋아했어요. 동화 같은 그림을 꽤 잘 그린다고 했었는데…. 그림은 인위적 구성물이지만 글에 비해서 더 자기 ‘경험’에 가까워요.”

그가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은 목적의식이 분명했다. 머리글에서 그는 “단순한 묘사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그것은 한 사회가 갖고 있는 인간의 우주론적 위치나 인간의 도덕적, 사회적 위치에 대한 서사를 포함한다”고 말했다.

―동양화의 시점은 그려진 풍경 안에 있고 서양화의 시점은 풍경을 바라보는 한 지점에 있다고 하셨는데….

“동양에서는 주관과 객관이 엄밀하게 분리되지 않으며, 그런 상태에서 체험한 현실을 중시한다는 것이지요. 이에 반해 서양에서는 하나의 시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며, 자아가 자신의 원리에 의해 세계를 논리적으로 구성해요.”

―체험되는 현실을 중시한다는 동양의 그림보다 논리적으로 구성한다는 서양화가 오히려 더 사실적으로 보입니다.

“보통사람들에게는 현실 전체를 한꺼번에 체험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하나의 시점에서 분석하고 구성해서 이해하는 것이 더 쉽지요. 물론 이 방식은 그 구성틀 안에 들어오지 않는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는 약점이 있어요.”

동양 산수화의 경우 자신이 들어가 있고 싶은 이상적 세계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그 세계를 체감하지 못하는 일반인에게는 현실감이 적게 느껴질 수 있다는 난점은 그대로 남는다.

르네상스 이후인 17세기부터 서양화에서는 원근법을 중시했다. 기하학적 원근법을 이용한 20세기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거리의 신비와 우울’(1914년).사진제공 생각의나무

―연암 박지원도 주관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 창문 구멍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듯이 대상을 한발 물러서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에요. 조선 유학자들은 타자(他者)나 자연을 경험적 관계 속에서 바라봤고, 이를 통해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졌지요. 다만 효과적인 방법론이 없었기 때문에 도그마에 빠질 위험이 있었어요.”

그는 “동양 산수화가 조화로운 자연의 이상향을 그리면서도 분명 현실적 경험에 발을 딛고 있었다”고 했다. 또 “동양 전통에서 생각했던 이상적 삶이란 현실 속에서 주변과 자기 마음을 조용하게 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양화에서처럼 하나의 시점에서 원근법으로 바라본다면 세상을 더 다양한 관점에서 냉철하게 관찰할 수 있을 듯합니다.

“자아를 지우고 원근법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자아에 무한한 새 가능성과 자유를 가져오지요.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 어디서나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것은 한편으로는 자연정복의 가능성이 되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바로 인간해방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지요.”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 교수는 최근 ‘동양’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저 ‘동양 전통의 회복’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가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근대가 서로 어우러지는 보다 풍부한 미래상의 출현”이라고 강조했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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