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브라질의 선택 룰라'…룰라 성공스토리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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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과 부인 마리자 레치시아 다 실바 여사. 두 사람 모두 재혼으로 만났는데 마리자 여사의 전남편도 노동자로 밤중에 일하러 나갔다 강도에 살해당했다. 저자는 그녀를 “사자처럼 성격이 강한 여성으로 집안의 버팀목”이라고 평가했다. 사진제공 가산출판사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과 부인 마리자 레치시아 다 실바 여사. 두 사람 모두 재혼으로 만났는데 마리자 여사의 전남편도 노동자로 밤중에 일하러 나갔다 강도에 살해당했다. 저자는 그녀를 “사자처럼 성격이 강한 여성으로 집안의 버팀목”이라고 평가했다. 사진제공 가산출판사
◇브라질의 선택 룰라/브리뚜 알비스 지음 박원복 옮김/333쪽 1만2000원 가산출판사

2002년 10월 브라질의 27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앞두고 한 여론조사기관은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브라질의 최대 도시인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의 중상류층 자녀들 사이에서 노동자당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후보가 최다 득표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유는 그 자녀들의 부모가 ‘만일 룰라가 당선되면 미국의 마이애미로 이사갈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실제 선거에서 노동자 출신의 룰라 후보는 모든 지역에서 1위를 차지했다. 유권자들은 성별 나이 학력과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룰라를 1위로 선택했다. 좌파 후보인데도 당의 노선을 중도 좌익으로 조정하고 시장경제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룰라는 실패할 여건만 갖춘 사람이었다. 1945년 10월 주민들의 평균 수명이 33세인 북동부 오지(奧地)에서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집안의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룰라가 태어나기 한 달 전 집을 나가 딴살림을 차렸다. 7세 때 행상을 시작했고 12세에 글을 깨쳤지만 초등학교를 마치지는 못했다.

자동차부품 생산공장에서 왼쪽 새끼손가락을 잃었고 71년에는 병원에서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만삭의 아내와 뱃속의 아들을 잃었다. 가난 때문에 처자를 먼저 보낸 룰라는 이를 악물었고 1975년 브라질 노조 사상 전대미문의 득표율인 92%를 얻어 노조원 10만명의 철강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브라질의 노동운동 역시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이었다. 룰라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등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으며 1980년에는 노동자당을 창당했다. 시골 동네 페르남부쿠주(州) 출신이 브라질 노동계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가난을 통해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 노조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을 익혔다. 정공법을 택했으나 절대 대화와 타협의 끈을 놓지 않았다. 노조 내의 폭력은 물론 파업에서의 폭력행위를 금지했으며 사주(社主)와 한번 합의한 내용은 노조원들이 반발해도 반드시 지켜냈다.”

룰라는 눈앞의 이익을 위해 신의를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1990년 룰라는 대통령 선거에 첫 도전해 승세를 탔지만 상대 후보의 계략으로 한때 연인 관계였던 여성이 “룰라가 나와 딸 루리앙을 버렸다”고 거짓 증언하는 바람에 발목이 잡혔다. 선거참모들은 루리앙을 텔레비전에 출연시켜 거짓을 바로잡도록 하자고 주장했지만 룰라는 “내 딸이 엄마를 비방하기 위해 텔레비전에 출연하게 할 수는 없다”고 선언했고 선거에서 패배했다.

아쉽게도 이 책은 올 1월 1일 취임식장의 들뜬 분위기를 전하는 것에서 끝난다. 룰라 대통령은 좌파적 이념을 접고 실물경제에 밝은 전문가들을 내각에 전진 배치해 단기 부양책보다 중장기 성장기반 구축에 전력을 쏟고 있다. 룰라 대통령의 ‘제3의 길’이 성공할지 예측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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