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명 수용공간서 120여명 칼잠…北京영사부 탈북자 실태

  • 입력 2003년 10월 6일 2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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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지은 민원인 주중 한국대사관 베이징 영사부가 7일부터 여권과 비자발급 등 일체의 민원 업무를 중단한다고 밝힌 가운데 6일 영사부에 일을 보러온 민원인들이 줄을 서 구내로 들어오고 있다. 베이징=연합
줄지은 민원인 주중 한국대사관 베이징 영사부가 7일부터 여권과 비자발급 등 일체의 민원 업무를 중단한다고 밝힌 가운데 6일 영사부에 일을 보러온 민원인들이 줄을 서 구내로 들어오고 있다. 베이징=연합
주중 한국대사관 영사부는 지난해부터 ‘영사관 호텔’로 불리기 시작했다. 늘 수십 명의 탈북자들이 장기체류하면서 붙은 별명이다. 직원들은 총영사를 ‘호텔 사장님’으로 부르기도 한다.

베이징(北京) 동쪽 싼리툰(三里屯) 외교단지 외곽의 한국 영사부는 대사관과 1km 정도 떨어진 별도 건물. 이곳에는 한국 비자를 받거나 한국인과 결혼하려는 조선족 및 중국 민원인들이 매일 장사진을 치고 있다.

지난해 5월 23일 탈북자가 한국 영사부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건물 담을 뛰어넘었고 이후 대부분이 육탄돌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영사부 주변에 철조망을 설치하자 지난해 가을부터는 가짜 중국공민증(주민등록증)을 경비에게 제시한 뒤 버젓이 정문으로 들어서는 사람이 늘고 있다.

당연히 영사부에 들어오는 탈북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영사부측은 지난달만 해도 하루에 1명 정도 들어오던 탈북자가 최근에는 배 이상 증가했다고 말하고 있다. 대사관측은 “지난해 5월부터 우리 공관에 들어온 탈북자들이 모두 150여회에 5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단층인 한국 영사부 건물의 내부 면적은 500여평. 이 중 3분의 1에 가까운 공간을 탈북자들이 사용하고 있다. 영사부는 직원 휴게실과 창고 등을 개조해 강당 크기의 큰 공간과 함께 중간 크기의 방 2개, 그리고 여러 개의 작은 방을 만들어 50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영사부의 한 직원은 “탈북자들은 영사부 바깥은 물론 내부 사무실 출입도 금지되며 오전 7시에 일어나 오후 11시에 취침할 때까지 주로 KBS TV나 한국 관련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이들 중에는 외국어 능력 등을 갖춘 지식인도 적지 않아 영사부에 함께 수용된 10여명의 어린이들에게 영어회화와 수학 등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 직원은 “잠은 군대 내무반처럼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지만 탈북자들이 늘어나면서 칼잠을 잘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런 환경에서 대개 두 달 이상을 지내야 하기 때문에 탈북자들의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다. 북한 내 신분도 달라 서로 심각한 갈등을 빚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는 게 영사부측의 설명이다.

영사부는 특히 탈북자들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지난번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만연했을 때는 사스 환자가 발생할까봐 영사부 직원들이 노심초사했다. 7월에는 임신부가 출산 통증을 호소해 한바탕 소동을 치른 적이 있다. 결국 중국 공안으로부터 체포하지 않겠다는 내부 양해를 얻은 뒤 베이징 시내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고 일주일간 산후 조리까지 한 뒤 영사부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최근엔 하루 100명이 넘는 식사를 해결하는 일이 고민이다. 베이징 시내의 한국 음식점들을 번갈아 가며 한 달 간격으로 지정해 설렁탕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을 주문해 배달하도록 하고 있다. 한 직원은 “하루 세끼 300그릇 이상씩 식사 주문이 늘어나다보니 비용도 만만치 않다”면서 “처음 탈북자들이 들어왔을 때는 한 끼에 50위안(약 7500원) 정도 하는 식사를 제공했지만 지금은 질이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영사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탈북자들이 제3국으로 출국할 때까지 이들의 신변은 물론 건강과 정신적 안정 등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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