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산책]개교 50주년 한국학교 ‘축제속 고민’

  • 입력 2003년 10월 6일 2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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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하늘에 펄럭이는 형형색색의 만국기 아래에서, 맵시 고운 한복 차림의 소녀들이 부채춤을 추었다. 콩주머니 넣기를 하는 꼬마들이나 줄다리기를 하는 어른들의 표정이 한국의 여느 운동회와 매한가지다. 이곳이 일본 도쿄의 한복판임을 잠시 잊게 해준 시간이었다.

4일 도쿄 스미다가와(隅田川)육상경기장에서는 도쿄한국학교 창립 50주년 기념운동회 겸 민단 가을축제가 열렸다. 800여명의 초중고교생과 학부모, 도쿄 거주 교포 등이 경기장을 메웠다. ‘대∼한민국’ 구호가 확성기로 널리 퍼져나갔다.

혹독한 식민통치를 겪었던 노인들은 민속무용을 보며 감개무량했다. 15세 때 일본에 건너왔다는 78세 노인은 “손자가 일본에 살지만 내 뼈를 일본에 묻을 수야 없지 않느냐”며 망향의 눈물을 찍어냈다. 교포 4세 꼬마들은 일본어로 떠들면서 어른들 사이를 누비며 술래잡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식민지 백성의 설움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말자며 뭉친 재일교포들이 학교를 세운 지 50년. 행사장에서 들리는 말은 어느덧 한국어와 일본어가 반반으로 섞였다. 일본인을 남편이나 아내로 맞아들인 사람도 제법 됐다. 도쿄한국학교 학생 가운데는 국적이 일본인인 아이들도 있다.

운동장 한쪽에서 몇몇 사람이 걱정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 정부가 파견하는 교사 수가 올해 11명에서 내년에는 9명으로 줄어드는 데 대한 우려였다. ‘다른 나라에 비해 파견교사가 많아 감축한다’는 정부의 방침을 처음 듣는 이들은 분개하기도 했다. 40대의 한 재일교포는 “한국 정부는 학교 설립 때부터 교포 교육에는 ‘변함없이’ 무관심했다”며 혀를 찼다.

학교측이 영주권을 가진 재일교포 자녀를 대상으로 한 중등부 과정을 내년에 신설하는 등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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