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터넷]중앙대 모의법정 '불법e메일' 재판현장

  • 입력 2003년 10월 6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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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윤상선기자
그래픽 윤상선기자
대학생들은 불법 스팸메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중앙대 법대 학생들로 구성된 동아리 민사법학회는 모의법정을 열어 이 문제를 심리했다.

모의법원은 스팸메일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형사처벌을 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해 민사상 책임을 무겁게 지우는 것. 손해배상금을 실제 손해액보다 수십∼수백 배 더 부과하는 선례를 남겨 이후 유사한 사례의 재발을 막자는 취지다.

그러나 모의법원은 “이 방식이 한국에서 인정된 적이 없으며 선례가 있는 미국에서도 위헌 논란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판사들은 이 원칙 적용을 두고 마지막 순간까지 논쟁을 벌였다.

“근절책만으로 불법행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른 합리적 방안이 있어야 한다.”

“법을 만드는 사람보다 법망을 피해 가는 사람이 언제나 앞서 간다. 법이 없어도 처벌에 준하는 조치는 있어야 한다.”

▽알짜 정보 가리는 스팸=2일 중앙대 법대 동아리 민사법학회 주최로 열린 민사 모의재판의 원고는 스팸메일 때문에 경품 당첨 통보를 못 받아 BMW 승용차를 날린 ‘왕당첨’군.

피고는 왕당첨에게 불법 스팸메일 300여 통을 일시에 보낸 ‘다마가’와 웹메일 서비스 업체 ‘다다음’이었다.

원고측 변호인은 “왕당첨이 수신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다마가측이 광고메일을 계속 보내는 바람에 정작 경품 당첨 알림 메일을 받지 못했다”며 “다마가측은 경품 해당 대금과 위자료 3억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웹메일 서비스 업체 다다음에 대해서는 “스팸메일 분류 서비스를 하고는 있으나 분류된 스팸메일 역시 원고의 메일 용량에 포함되고 있어 유명무실하다”며 “위자료 2억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법정인 6101호 강의실을 꽉 채운 방청객 200여명. 이들은 평소 스팸메일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중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법대생들이 홍보차 서비스한 ‘스팸’(돼지고기 햄)을 먹고 모인 스팸 피해자들이었다.

▽“스팸도 표현의 자유”=피고측 변호인은 “스팸메일도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에 다마가는 배상 책임이 없으며, 다다음도 ‘서비스’로 스팸메일을 걸러줄 뿐, 책임을 진다는 표현은 약관에 없으므로 배상 책임도 없다”고 맞섰다.

원고측 변호인은 “발송 비용을 발송자가 내는 오프라인 우편물과 달리 스팸메일은 e메일을 받는 저장공간 및 통신비용을 수신자가 부담한다”며 “보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표현의 자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 “약관은 기업측이 일방적으로 작성하기 때문에 약관 표현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다다음의 횡포”라고 주장했다.

▽옵트인 도입해야=‘옵트인’ 제도도 이슈로 떠올랐다. 원고측은 “수신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다마가측이 스팸을 계속 보냈다”고 밝히자 피고측은 “수신 거부 표시는 단지 형식에 불과한 것”이라며 옵트아웃 무용론을 제기했다.

옵트인이란 사전에 수신의사를 밝힌 사람에게만 대량 메일을 보낼 수 있는 제도. 이에 반해 옵트아웃은 일단 스팸메일을 받은 뒤 거부의사를 밝히면 그 다음부터는 발송자가 스팸을 못 보내도록 하는 것. 현재 한국은 옵트아웃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나 최근 국정감사에서 정보통신부는 “조속히 옵트인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증인으로 나온 ‘한국 소비자만 보호원’의 원장은 “대부분의 소비자는 스팸메일 피해를 보고도 ‘따져도 소용없다’는 생각에 발송업체에 항의하지 않으며 대신 소비자만 보호원에 매달린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e메일 사용자들은 쏟아지는 스팸메일에 대해 포기 상태라는 것.

▽스팸은 유죄=“법과 원칙에 따라 피고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좌배석 판사와 “e메일 사용에 능숙한 네티즌과, e메일로 마케팅을 하는 기업들의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우배석 판사가 끝까지 의견충돌을 벌였다.

그 결과 법원은 피고 다마가는 원고에게 1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마가는 수신 거부 의사를 무시하고 계속 스팸을 발송해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직접 위반했다는 것. 다만 원고도 메일을 제때 정리하지 않은 책임이 일부 인정됐다.

모의법원은 다다음에 대해서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웹메일 서비스 업체 다다음측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스팸을 근절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인정된 것.

▽“모의법원은 관대했다”=이날 모의재판을 지켜본 이인영씨(영문과 2년)는 “스팸메일 때문에 보고서 제출용 자료를 못 받은 적인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불법 스팸메일 발송업체들은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모의재판 준비위원장 한연수씨(법학과 3년)는 “재판결과는 스팸 발송업체에 절반의 책임을 묻는 수준에서 끝났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서라도 스팸을 없애야 한다는 게 준비 과정에서 동아리 회원들이 가진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이날 모의재판은 6개월간 준비 끝에 마련됐으며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이 후원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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