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콜센터

  • 입력 2003년 10월 6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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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인기 폭발인 미국 시트콤 ‘프렌즈(Friends)’의 한 대목. 귀엽고 착하지만 좀 엉뚱한 여주인공 피비가 컴퓨터용품 관련 콜센터(Call Center)에 상담원으로 취직했다. 고객의 문의전화를 받고 전화판촉을 하는 게 일이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피비가 상냥하게 전화를 받자 수화기 저쪽의 남자가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난 자살할거요.” 아무리 상담매뉴얼을 들여다봐도 이에 대한 응대법이 있을 리 없다. 그냥 끊어버려도 그만이지만 착한 피비는 모른 척 못 한다. 수소문 끝에 손님을 찾아가 자살을 말린다는 흐뭇한 결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피비라도 이런 좋은 일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졌다. 비용절감을 위해 계속 인건비가 싼 지역으로 콜센터를 옮겨 온 미국 기업들이 이젠 아예 외국에다 콜센터를 차리기 때문이다. 미국 북동부의 오마하라는 곳은 영어 악센트가 하도 듣기 좋아서 이상적인 콜센터 지역으로 꼽혀 왔지만 그 시절도 끝났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소비자창구나 델타항공에 예약전화를 걸면 인도에 있는 콜센터 상담원이 받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인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임금으로 영어가 ‘되는’ 인도인을 쓸 수 있는 이곳은 세계화시대의 매력적인 아웃소싱 현장으로 떠올랐다.

▷콜센터는 전화로 상품을 ‘생산’하는 일종의 제조업이라 할 수 있다. 생산원가가 싸고 경쟁력 있는 지역으로 공장을 옮기는 것은 세계화시대의 큰 흐름이다. 미국에선 제조업을 중심으로 해외 이전이 날로 늘고 있어 사라진 일자리의 15%가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집계된다. 제조업뿐 아니다. IBM 보잉 모건스탠리 등 테크놀로지와 투자 분야의 화이트칼라 지식노동자들도 해외에 있는 경쟁자들에게 일자리를 내주는 추세다. 이 때문에 경제는 살아나는데 실업률이 증가하는 기이한 현상이 미국을 옥죄고 있다.

▷우리의 국민은행도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중국으로 콜센터를 옮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란다. 국내 상담원 월평균 급여가 130만원인데 중국에선 1000위안(약 13만원)이면 충분하므로 통신비를 감안해도 이익이라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고임금을 피해 생산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사례는 많았지만 이제 은행 같은 서비스 업종도 해외 이전을 꾀하기 시작했다는 건 적지 않은 의미와 충격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비숙련 저임금 외국노동자뿐 아니라 해외 고급 인력과도 일자리 다툼을 해야 할 판이다. 자칫하다가는 이 땅에 기업과 공장은 간 데 없고 실업자만 가득할 수도 있다. 우물 안 시대 가치관으로는 살기 힘들다. 이젠 세계인이 경쟁자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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