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등교거부 철회 첫날]주인찾은 교정 ‘80일만의 웃음꽃’

  • 입력 2003년 10월 6일 18시 17분


코멘트
전북 부안군 부안초등학교 학생들이 6일 40여일 만에 등교해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부안=연합
전북 부안군 부안초등학교 학생들이 6일 40여일 만에 등교해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부안=연합
“집에서 답답하게 지내다 학교에 나와 친구들과 선생님을 보니 너무 너무 좋아요.”

6일 오전 전북 부안군 동진면 동진초등학교 교정은 참으로 오랜만에 생기를 되찾은 분위기였다.

핵폐기장 유치에 반대하며 2학기가 시작된 8월 25일부터 40여일 동안 등교를 거부해오다 이날 학생들이 처음 등교했기 때문. 여름방학까지 합하면 사실상 80여일 만에 학교 곳곳에서 학생들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원이 95명인 이 학교는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 중인 학생 1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학교에 나왔다.

그동안 이 학교는 하루 평균 2, 3명의 학생만이 등교해 세 차례나 휴업을 해야 했다.

교사들이 수업 결손을 막기 위해 각 마을을 돌며 마을회관 및 교회 등에서 공부방을 운영하거나 가정학습 교재를 나눠 주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날로 줄어드는 주민들 때문에 1명의 학생이 아쉬운 처지에서 지난달에는 3명의 학생이 아예 인근 도시인 김제시로 전학을 갔다.

이 학교 최규성(崔圭晟·51) 교사는 “그동안 학생 없는 학교를 지키며 학생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을 만나러 가정방문을 했을 때 혹시 핵폐기장 유치를 설득하러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아 맘고생도 많았는데 아이들을 보니 씻은 듯이 사라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미술실에 모인 3학년 학생들은 ‘최근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13명 모두 핵폐기장 반대 시위 현장을 소재로 삼았다.

아이들의 그림에는 반핵을 상징하는 노란색 마크와 ‘핵폐기장 결사반대’ 구호가 적힌 깃발이 선명했다.

날이 새기 전인 오전 6시경 학교에 도착했다는 이우식(李愚式·61) 교장은 “40여년 교직 생활에 이번처럼 장기간의 등교 거부는 처음”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여전히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만큼 솔직히 불안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하서면 백련초등학교는 정원 65명 가운데 63명이 출석해 아침 일찍 전교생이 모두 대전동물원으로 그동안 미뤘던 가을 현장학습을 떠났다.

승용차로 아들을 등교시키던 한 학부모는 “자식을 학교에 보낼 수 없는 부모 심경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PC방과 만화방 등을 돌아다니던 아이가 정상적인 생활리듬을 찾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변산서중 2학년 송유미양(15)은 “낮에는 영어학원에 다녔고 밤에는 촛불시위에 참가했다”면서 “촛불시위 현장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학교에서 보니 더 반갑다”고 말했다.

4일 오후 부안지역 학교운영위원회가 등교 거부를 전격 철회해 모든 학교가 이날부터 정상수업을 시작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역주민들은 물론 외부인들도 등교 거부 철회에 대해 “현명한 결단이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학교운영위는 “정부와의 대화가 중단되거나 핵폐기장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더욱 강력한 2차 등교 거부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며 “이제는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밝혔다.

주민과 정부간의 대화가 이번 주 시작될 전망이지만 양측이 입장이 팽팽해 대화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한편 부안지역의 각 학교는 그동안의 수업일수 부족과 수업결손을 메우기 위해 겨울방학을 1, 2주 줄이고 방과 후 수업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부안=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