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3년 노벨문학상에 토니 모리슨

  • 입력 2003년 10월 6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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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만명, 그리고 그 이상.’

1993년 10월 7일. 미국의 노예제도로 희생된 흑인들에게 자신의 대표작 ‘빌러브드(Beloved)’를 헌사했던 미국의 작가 토니 모리슨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여성으로는 8번째, 흑인여성으로는 첫 수상이다.

모리슨은 빈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워싱턴의 하워드대와 뉴욕 코넬대(석사)를 나와 하워드대와 프린스턴대에서 교수로, 명문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에서 편집자를 지냈다. 그가 미국의 격렬한 흑인문학 계보에서 비교적 온건 성향으로 분류되는 것은 이런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그는 흑인작가로서는 드물게 이데올로기적인 문학운동에 참여한 적이 없다.

1988년 퓰리처상을 받은 ‘빌러브드’를 보자.

소설의 모티브가 된 것은 미국 신시내티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 흑인 여자노예가 탈출한 지 하루 만에 다시 노예사냥꾼들에게 붙잡힐 처지가 되자 딸아이를 단칼에 베어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충격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서평에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걸작”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에드윈 요더는 “스웨덴 한림원이 자국어 이외의 언어에 대한 무지를 또다시 드러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의 소설은 단지 “모호함 속에서 표류하고 있을 뿐”이라며 상은 마땅히 흑인문학의 위대한 전통을 잇는 리처드 라이트나 제임스 볼드윈에게 돌아갔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모리슨은 작품에서 흑인들의 고통을 뼛속 깊이 묘사하고는 있지만 거기에는 백인에 대한 증오나 분노, 저항이나 대안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존재의 한 조건으로 제시될 뿐이다.

올해 수상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존 쿠체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란이 이는 걸 보면, 스웨덴 한림원이 특정 인종이나 민족에게 선심을 쓰고자 하는 충동에는 쉬 이끌리면서도 노벨문학상의 ‘사회적 명분’에는 턱없이 둔감하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것 같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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