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들여다보기]KBS, ‘흑백화면’에 안주할텐가

  • 입력 2003년 10월 6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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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다큐멘터리 등에서 흑백 자료화면을 보면 옛 생각이 떠오른다. 당시 안방 한쪽 면을 비중 있게 차지한 텔레비전 앞에 식구들이 모여 프로그램을 보며 일희일비했다.

흑백 자료화면을 보면서 ‘나 챔피언 먹었어’의 주인공인 권투선수 홍수환과 파나마의 카라스키야 경기, 미국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 중계 화면이 떠오르는 것도 그 당시 각인된 강한 인상 때문일 것이다. 그처럼 흑백 화면은 우리 과거의 상징인 것이다.

이렇듯 과거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흑백화면이 요즘 KBS에 넘쳐 나고 있다. 정연주 사장이 취임한 후 KBS가 신설한 개혁 프로그램들이 한국 현대사를 재평가하겠다며 1960∼70년대 ‘대한뉴스’의 흑백 화면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KBS의 ‘인물현대사’와 ‘한국사회를 말한다’가 대표적인 예다.

‘인물현대사’는 이한열의 어머니인 배은심씨를 첫 인물로 등장시켰으며, 이후 청계피복의 분신노동자 전태일씨 등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1970년대 원주에서 민주화 투쟁의 정신적 지주로 불린 장일순,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만든 영화감독 하길종, 판자촌에 들어가 도시 빈민들과 함께 생활한 제정구씨 등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사회를 말한다’도 ‘입국금지-최후의 망명객’과 ‘귀향, 돌아온 망명객들’ 등이 시리즈로 이어졌다. 4일에는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다’가 방송됐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질곡의 현대사에서 비판자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KBS가 이제라도 제 역할을 해야겠다는 정서를 담고 있다. 프로그램 기획 의도에서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란 말처럼, 역사를 다루는 것은 방송의 역할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KBS의 프로그램들은 이런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찜찜한’ 구석을 갖고 있다. 과거보다 ‘오늘’을 비추고 ‘내일’의 비전을 제시하는 게 방송과 언론의 더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국가 기간(基幹)방송인 KBS는 역사를 반추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한국 사회의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알베르토 아저씨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돌아온 살바토레(토토)가 젊은 날 보지 못했던 키스 신을 보면서 추억에 빠지는 장면이 있다. KBS가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문제를 다루는 것만으로 스스로 만족한다면 토토의 회상에 머물 우려가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공영방송 KBS가 한국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KBS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시청자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chlee@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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