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프로젝트]<13>中 둔황석굴群 보존

  • 입력 2003년 7월 31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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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중엽 북주시대에 만들어졌다는 428호 석굴은 불상이나 벽화의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둔황=이영이기자
6세기 중엽 북주시대에 만들어졌다는 428호 석굴은 불상이나 벽화의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둔황=이영이기자
《중국과 서역을 잇는 실크로드의 관문이자 고대 동서교역과 문화교류의 중심인 둔황(敦煌). 그중에서도 4세기경부터 1000년의 세월을 두고 제작된 거대 석굴군 모가오쿠(莫高窟). 한국 불교미술의 원점이자 동양미술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불과 100년도 채 안 된다. 13세기 원(元)이 들어서면서 실크로드 왕래가 끊기고 그 존재가 잊혀졌던 둔황 모가오쿠는 20세기 초 서구 탐험가들에 의해 깊은 잠에서 다시 깨어났다. 그러나 곧바로 서구인들의 탐욕과 중국인들의 무지, 자연풍화 등으로 인해 약탈당하고 상처 입었다. 뒤늦게 198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뒤 중국 정부와 둔황문물연구원은 미국 일본 등의 연구소들과 손잡고 보호 복원작업에 적극 나섰지만 ‘모가오쿠 살리기’ 프로젝트는 간신히 훼손의 속도를 늦출 뿐이었다.》

중국 서북부 타클라마칸 사막에 위치한 둔황 모가오쿠는 그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황량하고 퍼석퍼석한 모래산 절벽에 군데군데 벌집 파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친 기후 속에서 1000년 이상을 견뎌온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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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1.6km에 이르는 둔황 모가오쿠의 석굴군. 4세기경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이 석굴들은 100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온갖 풍파를 견뎌왔다. -사진제공 둔황문물연구원

둔황문물연구원 가이드 리신(李新)을 따라 손전등을 비추며 캄캄하고 작은 석굴들을 둘러보았다. 처음 들어간 16호 석굴은 한때 당나라 전성기 불교미술을 뽐냈다지만 불상에는 모래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고 벽화도 거의 퇴색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느끼게 했다.

16호 석굴 안 오른쪽에 뚫려 있는 17호 석굴 앞에 서자 리씨가 갑자기 “1907년 영국인 스타인과 그 이듬해 프랑스인 펠리오가 이곳에 있던 장서 4만여권을 약탈해갔다”고 소리치며 흥분했다. 신라 승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그때 흘러나간 것이다.

그는 “둔황 보물은 이렇게 ‘서양귀신’들에게 약탈당해 현재 11개국 44개 도서관과 박물관에 산재해 있다”며 어느 굴의 어느 보물을 누가 훔쳐갔는지 줄줄 외우기 시작한다.

수나라 벽화로 유명한 427호 석굴의 천장에는 수많은 천불(千佛)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천불화 속 부처의 얼굴들은 모두 흉측하게 뭉개져 있다. 1920년대 내전을 피해 도주해온 백러시아(현 벨로루시) 병사들이 부처님 얼굴의 금박을 모두 긁어 가버렸다는 것.

또 당나라 때부터 낙서가 시작됐다는 이 동굴은 전 세계 언어의 낙서 벽 같은 느낌을 주었다. 출입문 옆 안쪽 벽화에는 한국 관광객의 이름인 듯한 ‘고민정’이라는 한글도 새겨져 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물어보니 1993년 발견된 것이란다. 이곳 석굴들 중에는 무지한 중국 농민들이나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이 파괴한 곳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인위적인 훼손이나 약탈은 이제 어느 정도 사라졌다. 중국이 1920년대 중반 이후 무분별한 탐사를 전면 금지하고 최근에는 입장객 관람도 엄격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

둔황에서 7년째 벽화를 연구하고 있는 한국인 동양화가 서용(徐勇)씨는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모래 습기 염분 등 자연환경으로 인해 석굴의 보존이 위험수위에 왔다는 것”이라며 “각국 연구소가 공동으로 석굴 살리기에 힘을 쏟고 있지만 간신히 훼손의 속도를 늦추고 있는 정도”라고 말한다.

먼저 기후조건이 석굴을 괴롭혔다. 바로 옆의 밍사(鳴沙)산에서 끊임없이 불어오는 모래바람이 벼랑을 침식하고 석굴 안에 들이쳤다. 미국의 게티보존연구소와 둔황문물연구원은 길이 5km의 바람막이 망사울타리를 석굴 앞에 세웠다. 그 덕분에 석굴로 들어오는 모래 양의 60%가 줄었다.

더 무서운 것은 염분과 습기, 곰팡이였다. 한때 모래바람을 막는다며 석굴 바로 앞에 포플러를 빽빽이 심었다가 큰 낭패를 보았다. 나무에 준 물들이 석굴 안으로 스며들었고 흙 속에 있던 소금기가 녹아나와 벽화 표면을 갉아먹기 시작한 것. 벽화에는 수분과 염분이 치명적인 독(毒)이라는 것을 깨닫고 상당수의 나무를 베어버렸다.

북량시대 만들어졌다는 275호 석굴과 266호 석굴은 벽화 표면에 소금이 하얗게 달라붙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어떤 부분은 소금 결정체와 함께 이미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모가오쿠에서 두 번째로 큰 26m짜리 미륵불이 있는 130호 석굴도 심각하다. 연구원측은 20여년간 염분 제거에 골머리를 앓아왔지만 뾰족한 치료법이 없다고 한다. 벽화 표면이 떨어지지 않도록 수시로 화학주사를 놓아주는 것이 고작이라는 것.

최근 일본의 도쿄문화재연구소와 오사카대 연구팀 등이 첨단기기를 동원해 석굴의 온도와 습기, 염분, 인근 지질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있지만 “약해질 대로 약해진 석굴군을 자연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연구원측은 털어놓았다.

한해 50만∼60만명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입김도 모가오쿠의 최대 적(敵) 중의 하나다. 연구원측은 이 때문에 하루 방문객 2000명, 한번에 20명씩만 들여보내는 등 관람을 제한한다. 석굴도 매년 바꿔가면서 10∼30여개씩만 개방하고 있다.

그 대신 미국의 노스웨스턴대와 공동으로 복제굴이나 3차원 영상 CD를 제작해 모가오쿠에 들어가지 않고도 벽화나 불상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입체영상작업은 현재 100여곳, 복제굴은 10여곳이 완성된 단계다.

254호 석굴에서는 이 연구원 미술연구소 소속 화가 자오쥔룽(趙俊榮·47)이 희미한 불빛 아래 벽화를 모사하고 있었다. 가로 3m, 세로 2m짜리 넓이의 벽화를 모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년 정도. 그는 “모사한 벽화는 바로 앞 박물관의 복제굴로 옮겨져 관광객들에게 선보이고 이 석굴은 비공개 보존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의 모사 작품이 실물과 전혀 다를 바 없이 보였지만 다시는 이 석굴 벽화를 직접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둔황=이영이기자 yes202@donga.com

▼둔황 석굴群은…▼

중국 간쑤(甘肅)성 둔황(敦煌)현 남동쪽 20km에 있는 대규모 불교유적.

366년 전진(前秦)의 승려 낙준(樂尊)이 밍사(鳴沙) 기슭 절벽에 석굴을 파기 시작한 이후 13세기 무렵까지 지속적으로 만들어졌다. 남북 길이가 1.6km에 이르며 크고 작은 석굴이 735개가 있는데 이 중 불상조각이나 벽화가 있는 석굴은 492개다.

석굴별로 제작 연대가 다르기 때문에 불교예술의 변화를 알 수 있다. 북위(北魏), 당(唐)대의 조각이나 회화는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빙하기 충적층에 속하는 수성암으로 된 석굴이어서 불상은 모두 소조상(塑造像)이며 벽화는 벽면에 석회를 칠한 뒤 짙은 채색을 한 불교회화가 대부분이다. 석굴 속의 소조상은 3000여개, 벽화는 면적이 4만5000m²에 이른다.

또 불교경전이나 경제 문학 과학기술 역사자료 등도 5만여건에 이르러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이뤄진 동서교역이 및 문화교류 양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둔황석굴의 조사 보존사업은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이뤄졌으며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인근에 동(東)천불동굴. 서(西)천불동굴 등의 석굴도 있다.

▼“손상된 석굴 손보려면 20명이 100년 넘게 매달려야”▼

지난달 초 둔황 모가오쿠를 방문했을 때는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공포 때문에 외국인 연구원들이 모두 일시 귀국한 상태였다. 둔황문물연구원 보호전문가인 돤슈예(段修業·49·사진) 연구원은 “그렇지 않아도 석굴의 훼손 규모에 비해 인력과 장비가 부족한데 사스까지 겹쳐서 보호 작업에 차질이 생겼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1944년 둔황예술연구소로 설립됐다가 1984년 지금의 명칭으로 확대 개편된 문물연구원은 현재 보호, 연구, 관리 등 15개 부문을 두고 있다. 직원 200여명 중 전문가는 20명에 불과한 실정.

31년간 이곳에서 벽화 보호만 연구해 왔다는 그는 “연구원 20명 모두가 석굴 하나 수리하는데 2∼3년가량 걸린다”며 “지금 손상된 석굴을 모두 손보려면 100년 이상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10여년 전부터 미국의 게티연구소와 노스웨스턴대, 일본의 도쿄문화재연구소, 오사카대 등에서 매년 5∼10명 정도 찾아와 보호 작업을 돕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호주 이탈리아에서도 연구원 3명이 가담할 예정. 그러나 워낙 작업 자체가 기술적으로 어렵고 눈에 띄는 진전이 없기 때문에 중국 내에서는 이 일을 하겠다고 자원하는 젊은이들이 적다.

중국 내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매년 연구원들을 일본의 문화재 관련 연구소에 파견해 벽화 수리 기술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그 역시 1985년부터 3년간 일본의 교토(京都) 나라(奈良) 등 유적지 연수를 다녀왔다.

“한번 훼손된 벽화나 불상은 복원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그는 “둔황 석굴의 훼손이 더 이상 진전되기 전에 전 세계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둔황=이영이기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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