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바람난 가족'…결혼이 다 저런가?

  • 입력 2003년 7월 31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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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들의 저녁 식사’를 만든 임상수 감독의 영화 ‘바람난 가족’은 불친절하고 불편하다. 부부인 영작(황정민)과 호정(문소리)은 각각 사진작가, 옆집 고교생과 혼외정사를 벌이는데 이 사실을 서로 알면서도 개의치 않는다. 시어머니 병한(윤여정)은 간암 말기인 남편을 두고 초등학교 동창과 정사를 즐긴다. 이 가족이 왜 이렇게 사는지에 대해서 영화는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이 가족의 ‘엽기적 일상’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과장됐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가족에 대한 판타지를 송두리째 부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그래서 지금껏 적당히 모른 척하고 살아온 가족들의 코앞에 현실을 들이미는 감독이 얄궂다.

영화에서 ‘바람난 가족’은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고 허무한 섹스 끝에 가족의 소중함도 깨닫지 않는다. 호정은 남편 앞에서 자위를 할 만큼 ‘넌 만족을 못 준다’는 표현을 거침없이 하고, 영작도 그것을 심드렁하게 쳐다본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 아내를 살해하는 ‘해피엔드’처럼 배우자의 외도를 다룬 영화 중 결혼 제도의 손을 들어준 것도 적지 않지만 이 영화는 “현실은 이래. 넌 어떻게 살래?”라고 뻔뻔하게 묻는다.

영작과 호정은 ‘쿨(Cool)’하다. 배우자의 바람에 대해 악다구니 쓰지 않는다. 영작은 “내가 딴 여자 좀 만나고 다니는 게 무슨 문제니?”라고 말하고 호정은 그런 그에게 “잘 지내보라”는 식이다. 영작이 호정의 외도에 대해 퉁명스럽게 물으면 “너나 잘해”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바람난 가족’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현대의 가족이 겪고 있는 딜레마를 대변한다. “결혼하면 섹스는 맘껏 하겠구나 기대했는데, 중성 취급 당한다”는 호정의 말처럼 결혼은 상대방에게 성적 매력을 잃어가는 자신을 지켜보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이 영화에서 가족은 그저 자신이 사회적 다수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을 주는 장치일 뿐이다.

영작 부부가 입양한 아들 수인이 죽는 장면은 가족에 대한 임 감독의 직설화법을 보여준다. 알코올 중독자인 지루(성지루)는 영작에 대한 복수로 수인을 납치해 공사 중인 건물에 올라가 한치의 주저도 없이 던져버린다.

임 감독은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힘든 인생에 연애가 힘이 된다면, 까짓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며 힘들어하지 않고 그저 ‘저렇구나’라고 낄낄거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미혼에게는 ‘결혼이 다 저런가’ 싶고, 기혼에게는 ‘저렇게까지 낱낱이 말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이래저래 불편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터무니없는 판타지에 당한 인상은 아니어서 불쾌하진 않다. 27일 개막되는 제6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15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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