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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여름밤이면 악쓰는 소리가…" 파출소 夜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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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여름밤이면 악쓰는 소리가…" 파출소 夜談

입력 2003-07-31 16:26수정 2009-10-1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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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천호동 서부지구대의 전경. 자정 무렵 본격적으로 북적대기 시작하는 파출소 내부 모습. 심야영업을 하는 할인점에서 물건을 훔친 절도 용의자가 조사 받고 있다. 한 취객이 주정을 부리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자 파출소장이 뒤에 서서 난감해하는 모습.(위부터 시계방향) 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사람들의 야외 활동이 많은 여름밤, 파출소는 유난히 바빠진다. 여름밤이면 다른 계절에 비해 평균 10% 이상 사건이 많아진다.

서울 시내 456개 파출소 중 사건 많기로 유명한 서울 영등포구 역전파출소와 강동구 서부지구대 두 파출소에서 ‘여름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봤다.

역전파출소는 윤락가를 끼고 있는데다 관내 영등포역에 노숙자들이 대거 몰려있다. 영등포구 사건 가운데 20%가량이 이곳에서 일어난다. 서부지구대는 ‘천호동 텍사스’로 불리는 윤락가 423번지를 끼고 있으며 경찰이 집중 관리하는 유흥업소만도 1400여개, 강동구 사건 가운데 약 25%가 이곳에서 일어난다.

●영등포 역전파출소

“노숙자와 취객이 주요 ‘고객’이죠.” 강인호 경장이 요약한 역전파출소의 특징이다. 10개월째 역전파출소를 지키는 강 경장은 근무기간으로 따지면 최고참이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지난달 24일 오후 10시22분, 고객(노숙자)이 들어섰다.

노숙자=내가 참 힘들어. 1000만원 대출 받았는데, 이걸 좀 봐.(서류 몇 장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경관=뭐가 힘드세요?(서류를 펼쳐 본다)

노숙자=야! 남의 서류를 왜 함부로 여는 거야? 국민의 경찰이 이래도 되는 거야?

경관=난 또 우리보고 보라고 준 줄 알았죠.(서류를 다시 접는다) 그런데 처음 보는 분이네. 어디 사세요?

역전파출소 경찰관들은 인근 100여명 노숙자들의 얼굴을 대충 알고 있다.

노숙자=날 몰라? 왜 모르지? 나 여기 두어 달 살았는데. 왜 날 모르지?(‘크악’ 소리와 함께 바닥에 가래침을 뱉는다)

경관=아저씨. 이거 확인해보니까 아저씨가 영등포경찰서에 사기 사건으로 이미 접수를 시키셨네요.

노숙자=오늘 했지.

경관=그럼 조금 기다려보세요. 경찰서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노숙자=기다려? 내가 왜 기다려. 니들은 뭘 하고. 내가 그 사기꾼 XX한테 칼침을 꽂았어야 되는 건데, 후회가 많아. 내가 사람을 죽이지는 않거든. 그러니까 이 사건은 말이죠, 아시죠? 무조건 법원으로 가야 합니다.

횡설수설하던 노숙자는 경찰관들의 설득 끝에 20여분 만에 파출소를 떠났다.

25일 0시14분. 파출소 경찰관들이 가장 싫어하는 택시요금 시비가 벌어졌다. 한 택시운전사가 “취객이 돈을 안 낸다”며 파출소까지 찾아온 것. 돈이 없으면 무임승차로 입건시킬 수 있지만 돈이 있으면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손님을 빨리 달래 운임을 치르게 하고 집으로 보내는 게 상책이다.

한 경찰관이 장대비를 뚫고 택시 문을 열었다.

경관=아저씨, 목적지가 어디세요?

취객=니가 뭔데 남의 사생활을 캐고 다녀? 니 일 아니니까 셧더마우스 해.

경관=아저씨 일단 내리세요.(취객의 팔을 잡았다)

취객=어, 인권유린이야. 민주의 지팡이가 인권을 유린하네.

다른 경찰관이 취객의 가방을 꺼내자 그는 “어, 기물파손이야. 이것들이 민주의 지팡이 맞아?”라며 저항했다.

경관=그러면 가방, 택시 안에 놓고 가실 겁니까?

취객=이 병신들아. 증거를 놓고 가면 어쩌자는 거여. 증거가 같이 가야지, 증거가.

경관=왜 욕을 하세요. 경찰이 봉입니까?

취객=어휴 잘못했심다, 잘못해 죽겄심다.

취객은 한 시간 여를 실랑이하고도 끝내 돈을 내지 않았다. 택시운전사가 포기하고 떠나자 취객도 그제야 파출소를 나섰다.

오전 1시4분. 한 60대 남자가 들어와 거수경례를 했다.

남자=충성! 그런데 환장하겄네. 경부선이 끊어졌네. 허이 참. 이걸 어째야 하나?

경관=어디 멀리 가세요?

남자=수원요.

경관=수원은 건너가서 택시 타시면 돼요. 거기 택시 많이 있어요.

남자=그래요? 길 건너서? 그렇구나. 내가 뭐 도와주는 거 없이 괜히 와서 말시키고 그랬네요. 죄송합니다.

고분고분 떠나는 남자를 보면서 한 경찰관이 기자를 향해 “역전파출소 역사상 가장 점잖은 취객이시네요”라며 웃었다.

오전 2시17분, 관할 김밥집 앞에서 싸움이 났다는 112 신고를 받고 유재현 강인호 경장이 출동했다. 김밥집 앞에서 술에 취한 20대 남자가 경찰차를 세웠다. 얼굴 왼쪽 귀 부분이 피투성이다.

남자=나와 봐요. 제가 좀 싸웠거든요.

경관=누구하고 싸우셨어요?

남자=좀 기다려 봐요.(남자가 20여분 동안 거리를 배회하며 횡설수설 시간을 끈다)

경관=아저씨, 신고를 하셨으면 상황을 설명하셔야죠. 어떻게 싸우신 겁니까?

남자=(경찰관 말은 무시, 취재수첩을 든 기자를 쳐다보며) 그런데 아저씬 기자인 모양이네. 명함 하나 줘 봐요.

기자=명함은 왜요?

남자=기자는 원래 명함 주는 거예요. 아저씨 서울대 나왔어요? 한국의 엘리트네. 근데 엘리트가 왜 경찰하고 이렇게 밤에 유착하고 다녀요. 제발 부탁인데 유착 좀 하지 마요.(경찰과 나란히 있던 기자의 팔을 잡아 당긴다. 기자 팔과 옷에 그의 피가 묻었다)

이 남자는 끝내 누구와 왜 싸웠는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유 경장은 “저런 사람이 골치 아프다. 나중에는 ‘신고 했는데 경찰이 아무 조치 안 하고 사라졌다’면서 또 신고하기 일쑤”라며 자리를 떴다.

●강동 서부지구대

서부지구대는 5월까지 ‘천호4파출소’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 강동경찰서가 조직 개편을 하면서 천호 2, 3, 4 파출소를 통합해 6월부터 지구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26일 0시20분, 두 20대 남녀가 씩씩거리면서 파출소에 들어왔다.

남자=이 여자 좀 어떻게 해주세요. 제 20만원짜리 CD플레이어를 갖고 가서 안 준다니까요.

경관=아가씨, 왜 남의 물건을 안 돌려 주세요?

여자=그냥요.

경관=두 분 연인 사이세요?

남자=그냥 아는 사이에요. 연인은 무슨 연인.

이때 여자의 친동생이 파출소로 들어왔다. 그는 남자에게 “야, 몇 년씩이나 사귀었는데 우리 언니를 이렇게 병신 만들어? 우리 언니가 니 걸 훔쳤어? 절도로 신고를 해? 야, 니가 인간이야?”라고 소리쳤다.

남자=아, 시끄러워. 아저씨 얘들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연인 사이가 틀어지자 여자가 홧김에 남자 CD플레이어를 빼앗아 돌려주지 않는 상황. 30분쯤 있다가 결국 남자가 “그래 너 다 가져라”라고 소리치며 파출소를 나가버렸다. 여자가 “웃기고 있네”라며 남자를 따라 나갔다. 그런데 두 시간 후 이 남녀가 다시 파출소를 찾아왔다.

남자=아, 정말. 아저씨 얘가 이번엔 제 휴대전화를 가져가서 안 내놓잖아요. 도저히 못 참겠어요.

경관=아가씨, 진짜 왜 그래. 돌려줘요.

여자=싫어요. 법대로 처리하세요. 야, 니 휴대전화 초기화시킨다.

여자가 휴대전화를 진짜 초기화시켜버렸다. 남자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쟤 구속시키세요. 피해자가 강력히 처벌을 원하니까 집어 넣으세요”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여자의 고집이 계속되자 경찰관들이 난감해졌다. 파출소 한 구석에서 경찰관들이 의논을 시작했다.

“저게 절도죄가 되나?”

“아니지, 몰래 훔친 게 아니니까 절도가 아니지. 남자가 보는 앞에서 휴대전화를 집어간 거래.”

“훔친 게 아니고 빼앗은 거니까 갈취네.”

“횡령 아냐? 자기가 보관하는 타인의 재물을 반환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횡령 아닌가?”

“에이 참, ‘사랑싸움’이라는 죄를 하나 만들든가 해야지.”

‘법률적’ 토론은 결국 한 경찰관이 동부지청 당직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0시42분, 나이트클럽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던 10대 ‘삐끼’가 붙잡혔다. 경찰관이 진술서를 쓰라고 하자 삐끼가 버텼다.

삐끼=아저씨, 정말 쓸 말이 없거든요.

경관=그냥 있는 그대로 쓰면 되잖아. 너희들이 그 나이트 앞에서 뭘 했는지 그대로 써.

삐끼=제가요 글 솜씨가 없어서 못쓰겠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글 솜씨가 워낙 없었거든요.

경관=야, 그냥 벌어진 일 그대로 쓰라는데 글 솜씨가 왜 필요해? 너 무슨 소설 쓰냐?

1시10분. 건장한 20대 청년 세 명과 40대 남자 한 명이 파출소에 들어왔다. 술에 취한 세 청년은 극도로 흥분한 상태.

세 청년과 다른 패거리가 싸움을 벌이다가 길에 주차돼 있던 40대 남자의 차를 파손한 혐의. 세 청년은 “차를 부순 건 우리가 아니라 싸움 상대편”이라며 반발했다. 세 명 가운데 한 청년은 신고한 40대 남자에게 계속 “저 XX, 대가리에 빵꾸를 내버릴 거야”라며 협박했다. 보다 못한 경찰관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공갈 협박으로 감옥에 넣겠다”며 주의를 줬다.

청년1=넣어요. 누가 겁난데?

청년2=야, 너 왜 그래? 경관님. 용서해주세요. 얘가 정말 착한 애거든요. 파출소에 와 본 경험이 없어서 그래요. 용서해주세요.(울먹인다)

청년1=병신아, 내가 왜 와본 적이 없어? 벌써 세 번째야.

청년3=자랑이냐. 병신 XX. 조용히 입 닥치고 있어.

청년2=야, 너 계속 이러면 유치장 가. 물론 집행유예로 나올 순 있어. 하지만 네 인생은 그 순간 끝이야. 제발 잘못했다고 빌어. 경관님. 차라리 저를 집어넣으세요. 저를 공무집행 방해로 넣으세요. 이 XX가 경찰서가 뭔지, 징역이 뭔지 전혀 모르는 착한 애여서 이래요.

세 청년은 차를 파손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아 2시반경 풀려났다.

2시47분 파출소 무전기에 112 신고 내용이 전해졌다.

“(무전기 소음 들리며)서울 강동구 천호동 ○○번지.”

“우리 관내잖아.” 경찰관들이 긴장한다. 이어서 들리는 신고 내용.

“주택가, 주택가, 개소리가 크게 들린다는 신고입니다.”

“에이, 개소리를 우리보고 어쩌라는 거야?”

잠시 후 개소리를 처리한 경찰관들이 들어왔다.

“어떻게 처리했어?”(소장)

“뭘 어떡해요. 시끄럽다고 잡아먹을 수도 없잖아요.”

“개소리는 진짜 신고 좀 안 했으면 좋겠어. 작년에는 매미소리 시끄럽다고 신고를 하는 사람이 있더라니까.”(소장)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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