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고… 짓고…‘옥탑방의 운명’…단속피하기 숨바꼭질

  • 입력 2003년 7월 30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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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이 불법건축물인 옥탑방은 서울에서 한 해 3000∼5000여개가 새로 지어지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원대연기자
대부분이 불법건축물인 옥탑방은 서울에서 한 해 3000∼5000여개가 새로 지어지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원대연기자
25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방이동 다가구주택 신축현장.

아침부터 갑자기 들이닥친 구청 주택과 소속 직원들이 쇠망치로 1층 주차장에 증축한 속칭 ‘계단방’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건물주 김모씨(54·여)가 옥탑방 계단방 등을 불법 증축했기 때문이었다.

구청 직원들은 2주일 안으로 자진 철거할 것을 명령하는 ‘위법건축물 정비 통고서’를 던져주고는 떠났다.

김씨는 “옥탑방 등 불법건축물이 예외 없이 단속된다면 건물주가 지을 엄두를 내겠는가”라며 “단속당하는 사람들은 인사를 안 해서 단속됐다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자의적 단속=지난해 서울 서대문구 자신의 집에 옥탑방을 신축한 이모씨(34)는 “신축하면서 100만∼200만원을 구청 직원에게 건넸다”며 “분기별로 일정액을 제공하지 않으면 ‘불법 건축물’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벌금을 맞게 된다”고 말했다.

건축업자 김모씨(42)도 “정기적으로 인사를 하지 않으면 상당한 벌금과 단속 대상이 된다”며 “벌금을 내도 세를 주면 이익이 되기 때문에 건물주의 불법 증개축은 사라지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업자들은 서울 시내에서 연간 불법으로 만들어지는 옥탑방은 대략 3000∼5000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허술한 제도=현행 건축물에 관한 사용승인제도는 건물 내외부에 대한 검사는 건축감리사가 맡고 구청은 서류심사만 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건물주들은 일단 적법하게 건물을 신축해 사용승인을 받은 후 임의로 옥탑방 등 불법 건축물을 짓거나 아니면 아예 건축감리사와 짜고 서류상으로만 합법적인 건물을 만들어 사용승인을 받기도 한다.

한 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건물주로부터 시공권을 따내야 하는 감리사와 시공사의 공생관계를 감안하면 감리사가 불법 건축을 적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관리감독의 허점=옥탑방 같은 불법 건축물을 구청이 적발하면 자진철거를 지시하고 불응하면 6개월마다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구청들이 6개월에 한 번씩 표본지역을 선정해 점검을 하거나 민원이 제기되지 않는 한 불법 건축물에 대한 일제 단속 같은 행위가 거의 없다는 점.

이 때문에 ‘재수 없게’ 적발된 건물주들은 철거를 하느니 담당 공무원을 매수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시내 각 구청이 불법 건축물에 부과한 벌금은 100억원대. 적게는 2000만원(성동구)에서부터 많게는 11억여원(동대문구)에 이르기까지 편차가 크지만 평균적으로는 3억∼4억원의 재정 수입을 구청에 안겨주고 있다.

다세대주택을 주로 건축하는 최모씨(60)는 “불법 건축으로 이득을 보려는 건물주와 허술한 제도, 관리감독의 허점이 이 같은 구조적인 비리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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