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임채청/'386과 342'

  • 입력 2003년 7월 29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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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들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하는데 왜 다시 손을 잡고 세간의 이목을 끌려 했을까. 엊그제 본보 1면에 실린 한 장의 사진에 눈길이 머문다. 오랫동안 사이가 소원했던 YS와 JP의 다정한 모습이 또 무슨 조화냐 싶어 그런 것은 아니다. 한참 잘 나가다 요즘 구설에 휘말린 여권 내 386실세들의 상기된 표정이 3김의 노안(老顔)과 겹쳤다 갈라졌다 해서다. 2김의 어색한 어깨동무도 일찍 그 한계를 드러낸 386정치의 반작용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권력의 무대에서 퇴장을 앞둔 3김과 비상(飛上)을 서두르는 386정치인들은 주목할 만한 공통점이 있다. 사회적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기에 건국과 민주화라는 현대사의 역동적인 현장을 지켜보면서 벅찬 감격과 환희로 몸을 떨어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10여년 뒤 장년이 되어 4·19와 5·16,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극적인 역사의 반전을 계기로 정치권의 중심부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정치질서를 자기들 중심으로 바꿔 보려는 욕망도 서로 닮았다.

그래서 386정치인들은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른다. 3김이 조기에 성취했듯이 자신들의 시대도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고, 3김이 두고두고 누렸듯이 자신들의 미래 역시 양양할 것이라고. 아직 의원 배지도 없는, 노무현 대통령의 한 386측근이 “JP는 38세에 공화당 당의장을 했다”며 새로운 집권당의 사무총장이 되고자 하는 포부를 밝힌 것에서 속내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3김과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많다는 사실이다.

386식 조어법을 원용한다면 1920년대에 태어나 1940년대 해방공간에서 사회의식이 싹트고 30대에 입지(立志)한 3김은 ‘342세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세대의 이미지를 독점하려 하지 않았고 특정한 시대 경험을 공유했느냐 여부를 따져 무리를 짓거나 경계를 긋지도 않았다. 그들이 추구한 민주화와 인권, 근대화와 산업화는 공동체 구성원을 가르고자 하는 코드가 아니라 아우르고자 하는 코드였다.

그것은 편을 나눠 이쪽은 껴안고 저쪽은 내치려는 게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386정치인들의 신주류론이나 세대혁명론과는 지향점이 달랐다. 나중엔 3김도 권력에 중독돼 흉하게 퇴색하고 변질됐지만 적어도 출발은 그랬다. 또한 지금은 30, 40년 전에 비해 정치환경이나 사회상황이 크게 변했고 국력이나 민도(民度)도 혁명과 같은 급진적인 변화는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고 성숙했다.

사실 연령적, 연대적 의미에 불과한 386이라는 용어의 남용엔 순수하지 못한 측면이 없지 않다. 소수의 엘리트가 한 세대를 대표하려는 특권의식, 세대정서를 세(勢) 불리기에 이용하려는 목적의식, 다른 세대와 거리를 두는 듯한 배타주의 등이 감지된다. 지역주의에 편승한 3김과는 또 다른 정치적 상업성마저 느껴진다. ‘386음모론’ 역시 그런 토양에서 배양됐을 가능성이 크다.

386정치인들은 이제 386이라는 허상(虛像)에서 벗어나 누가 그랬듯이 밑바닥부터 기어야 한다. 겸허히 작은 일에 충성하면서 차근차근 꿈을 다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386이라는 자기주문에 사로잡혀 정치권의 ‘미운 오리’가 될 수도 있다.

임채청논설위원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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