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산책]佛, 미국식 인질구출작전 실패로 망신

  • 입력 2003년 7월 29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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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면서 배운다’고 했던가.

다른 나라의 주권을 무시하는 미국의 군사 일방주의를 줄곧 비난해 온 프랑스가 남미에서 미국식 특공작전을 펼치려다 실패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9일 브라질 서부의 마나우스에 프랑스군의 C-130 허큘리스 수송기 한대가 착륙했다. 이 수송기에는 프랑스 대외정보기관(DGSE) 요원과 군인 외교관 등 11명이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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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일행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DGSE 요원 4명은 전세 낸 브라질 비행기 편으로 콜롬비아와의 접경 지역으로 날아갔다. 이들에게 부여된 임무는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에 억류돼 있는 콜롬비아 여성 정치인인 잉그리드 베탕쿠르 전 상원의원(41)의 구출이었다.

프랑스와 콜롬비아 이중국적자인 미모의 베탕쿠르 전 의원은 콜롬비아 대선 후보로 나서 ‘콜롬비아의 잔다르크’로 불리며 돌풍을 일으켰으나 지난해 2월 반군인 FARC에 납치됐다. 프랑스측은 베탕쿠르 구출 작전을 ‘7월 14일 작전’으로 명명, 프랑스혁명 기념일인 14일에 작전 성공을 세상에 알린다는 시나리오까지 세웠다.

그러나 작전은 실패였다. 베탕쿠르 전 의원을 국경까지 데려오기로 했던 FARC측 내통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빈손으로 마나우스에 돌아온 4명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콜롬비아 정부의 출국 통보였다.

프랑스가 모처럼 펼친 특공작전은 수송기가 마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브라질 당국의 의심을 살 정도로 엉성했다. 브라질 당국이 비행기를 조사하려하자 프랑스 요원들은 옹색하게도 ‘외교관 특권’을 내세워 이를 거부했다.

이 작전이 브라질과 콜롬비아의 분노를 불러온 것은 당연했다. 브라질 언론은 “프랑스가 베탕쿠르를 넘겨받는 대가로 전립샘암을 앓고 있는 FARC 2인자인 라울 레이에즈에게 의약품과 수백만달러를 주기로 했다”고 보도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라크전쟁 전 프랑스는 힘을 앞세우는 미국을 비난하며 미국 ‘일극화(一極化)’보다는 ‘다극화(多極化)’ 세계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말만으로는 다극화 세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작전 실패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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