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20년 컬렉터에서 미술가로 첫 개인전 김창일

  • 입력 2003년 7월 29일 17시 46분


코멘트
서울에서 1시간 반 걸려 도착한 천안 고속버스 터미널. 붐비는 인파를 비집고 나오면 서울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넓은 조각 공원이 보인다. 프랑스 유명 작가 아르망이 폐타이어를 쌓아 올려 만든 ‘100만 마일’을 비롯해 국내 외 작가 작품 6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공원 옆에는 건축 면적 1500여 평에 이르는 5층짜리 건물 3∼4층에 총 5개의 전시실을 갖춘 대규모 전시장 ‘아라리오 갤러리’가 있다. 갤러리 벽에는 벤치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샐러리 맨과 5층 사다리를 올라가는 두 남녀를 실물과 똑같게 만든 설치 작품들이 붙어있다. 작품을 만든 이는 이 갤러리의 김창일 사장(52).

김 사장은 천안 고속버스 터미널과 백화점, 멀티 플랙스 극장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아리리오’의 회장. 그는 사업가이면서 수천여점의 작품을 수집한 경력 20여년 컬렉터다. 그가 이번에는 이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30일∼10월12일)을 연다. 사업가이자 컬렉터에 이은 또 다른 변신인 셈.

29일 열린 오프닝행사에는 문화, 미술계 인사와 지인 250여명이 모여 현대미술가로서 첫 개인전을 여는 그의 출발을 축하했다.

김창일 작 `자화상-Time is money2`. 사업하랴 그림 구상하랴 늘 시간을 효율적으로 쪼개 쓰기 위해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을 원형시계 속의 얼굴로 바꿔 찍은 사진작품이다.

●정규 미술교육 안받고 秀作 선보여

김 사장은 갤러리 건물을 증축해 지난해 말 재개관한 뒤 굵직한 현대 미술전을 열어 관심을 끌었다. 개관 기념전으로 만화 캐릭터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법론으로 유명한 미국 작고 작가 ‘키이스 해링’ 전을 열었으며 20일 끝난 팝 아트 전 ‘팝 스루 아웃(Pop thru out)'에는 앤디 워홀, 장 미셀 바스키아, 듀언 핸슨, 조다난 보로프스키 등 1950년대부터 2000년대 까지 팝 아트 역사를 이어오는 작가 27명의 작품 50여점을 선보였다.

이번 개인전은 20여년 컬렉터로서 안목을 키워 온 그가 창작의 열정을 결실맺는 자리. 갤러리 5층에 마련된 작업실에 들어서자, 그는 청바지 차림으로 캔버스 앞에서 붓질을 하고 있었다. “새벽에 영감이 떠 올라 아직 붓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그에게 ‘무엇을 그리느냐’고 묻자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그의 등 뒤로 하얀 화면에 빨강 검정 등 원색을 사용해 얼굴을 그린 화면이 보인다. 붓질은 이미 아마추어가 아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의 이력이 생각나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냐”고 묻자 그는 “하도 잘 그리는 이들이 많아 나는 어떻게 하면, 못 그릴까를 생각한다”고 껄껄 웃는다.

그는 이내 표정을 바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현대 미술에 대해 내린 결론은 아이덴디티다. 얼마나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자기를 표현하느냐가 현대 예술의 관심사다. 영국의 설치 작가인 데미안 허스트만 해도 공장을 운영하면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스태프까지 두고 있다. 사업가로서 죽음을 넘나드는 위기를 겪으며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미술애호라는 취미를 통해 이를 표현하는 법을 터득했다. 다양한 아이디어로 내 맘대로 만들고 그리는 작업을 통해 때로 내가 신(神)이 된 것처럼 느낄 때가 많다.”

`Success2`는 사다리를 올라가는 두 남녀의 모습을 표현한 설치작품으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현대인의 희망을 상징한다.

●오브제 사진 설치 등 다양한 장르 펼쳐

그의 말대로 이번 전시에는 평면 작업은 물론, 오브제 사진 설치 영상물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이 선보인다. 거대한 숲을 배경으로 돋보기를 자신의 얼굴에 대고 있다든지, ‘Do you have a dream?’이라는 글자를 배경으로 넥타이 정장을 한 얼굴을 원형 시계로 가린다든지 하는 자화상 시리즈나 소비 문화를 풍자하는 다양한 설치 작품은 전업작가 못지 않은 정신과 기량이 담겨있다.

그와 오랜 인연을 맺고있는 비평가겸 큐레이터 사울 오스트로우(미국 오하이오 클리브랜드 인슈티튜트 오브아트 학장)씨는 도록에서 “사실과 환상, 대중과 개인을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정치적이고 심리적인 부조리를 들춰내 지리멸렬한 미디어와 상업주의가 만연한 이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평했다.

그에게 미술은 단지 여기(餘技)가 아니다.

대학 3수, 혹독한 군대 경험, 그리고 사업도중 부닥친 부도 위험 속에서 때로 ‘사는 것 보다 죽는 게 낫다’고 느낄 때마다 그림은 그에게 도피처이자, 용기와 희망을 주는 절박한 대상이었다. 고민이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혼자 앉아 머릿 속으로 그림을 생각하는 ‘그림 명상’을 한다는 그는 사람들이 “미술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느티나무의 그늘처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휴식이 됨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41-551-5100

천안=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